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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에 떨어진 '미션 임파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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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기 경제부 기자) 가뜩이나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수립으로 비상이 걸린 기획재정부가 또 하나의 숙제를 떠안았다. 바로 ‘경기체감지수’의 개발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서민들이 경기 회복세를 체감할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바꾸겠다고 국민 앞에서 다짐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신년사에서 경제정책의 목표를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회복으로 잡았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체감경기가 개선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 대통령의 정무적 요구를 어떻게 경제학적으로 맞춰주느냐가 이번 과제의 핵심이자 청와대의 주문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이런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단적인 예가 MB물가지수다. 통계청이 매달 한 번씩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할 때마다 체감물가와의 괴리를 지적하는 비판이 잇따르자 고육지책으로 만들었다.

서민물가를 잡겠다며 지목한 ‘주요 생필품 52개’ 중 밥상물가에 해당되는 20개 품목을 골라 별도의 물가지수를 만든 것. 배추 양파 고추장 설탕 마늘 사과 우유 두부 고등어 식용유 등이 대표 품목들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번에 떨어진 과제는 차원이 다르다. MB물가지수가 한 부문의 체감지표만 뽑아내는 1차원 방정식이라면, 체감경기지수는 물가, 소득, 가계부채, 고용, 부동산 등 적어도 5개 부문의 체감경기지표를 뽑아 각 부문별로 가중치까지 뽑아 인덱스(indexㆍ지수)로 만드는 작업이다. 여기에 민간소비와 투자, 소비심리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보조지표까지 대입시켜야 한다. 기재부 내에서 “MB물가지수는 애들 장난 수준”이라는 곡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기재부 관계자는 “MB물가는 서민들이 많이 구입하는 품목들을 현장조사해 구매빈도에 따른 가중치를 반영해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체감경지지표는 원천적으로 계량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가 소득 가계부채 고용 부동산 등 각 부문의 가중치를 동등하게 20%씩 배분할 것인지, 차등을 둔다면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할 수 있겠냐는 것.

각 부문의 체감경기를 측정하는 방법론도 간단치 않다. 가계소득만 하더라도 소득분위별 증가율, 적자가구 비중, 지니계수, 소득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소득분배지표가 한 두개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버무려야 할지 막막하다는 게 실무자들의 하소연이다. 여기에 소득분위별 증가율의 경우 1분위부터 10분위까지 구간별 소득증가율을 동등하게 반영할지, 중간소득구간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둘지, 둔다면 얼마를 둘 것인지 등등 풀어야 할 난제가 한 두개가 아니다.

가계부채로 본 체감경기지수를 만드는 작업도 험난하다. 가계신용,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가계대출 연체율, 금융채무불이행자 추이 등 감안해야 할 변수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부동산은 또 어떤가. 주택매매와 전세가격 추이를 반영하면 된다고 하지만 전세가 상승으로 월세의 비중이 높아졌다면 이는 또 어떻게 지수화할 것이냐는 문제가 튀어나온다.

고용 부문 역시 난제다. 비정규직 비중, 임시일용직 비중, 상용과 임시일용직 임금 등 변수를 감안하면 된다고 하지만, 설과 추석 등 명절이 끼어있는 달의 계절적 요인을 제외하면 일관성 있는 지표를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그나마 물가는 지난해 통계청이 체감물가를 설명하기 위해 구입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2개 품묵으로 생활물가지수를 개발해 수치화가 가능해졌다는게 위로라면 위로다.

물론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고통지수(Misery index)라는 게 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해 경제고통지수로 이름을 붙혔다. 문제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단순히 합산하는 방식으로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인 삶의 질을 전혀 나타낼 수 없다는 점. 물가상승률이 5%, 실업률이 13%를 기록했다면 고통지수가 18이라는 식인데, 누가 공감할 수 있겠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지만 기재부 내부에서는 “지표경기와 체감경기의 차이가 왜 발생하는지, 누구나 인정하는 체감경기지표를 만든다면 노벨경제학상감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졸속과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돼 있다는 점도 기재부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MB물가지수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MB정부가 품목별로 부처별 담당국장까지 지정해 관리하도록 하고 인사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MB물가지수 관리는 실패로 끝났다. 인위적으로 가격상승을 누르다보니 공급이 더 줄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소수의 몇 개 품목에 물가관리를 집중하다보니 전체 소비자물가의 왜곡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의해 결정되는 가격을 정부가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였다.

전문가들도 체감경지지표 개발이라는 발상에 고개를 젓고 있다. 한 민간금융회사의 이코노미스트는 “매달 통계청이 내놓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투자와 함께 민간소비가 산업별로 정확하게 나온다. 향후 경기를 예측해 주는 경기선행지수까지 같이 발표되는데 이것만큼 체감경기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자료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초 논란을 빚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도 분석처럼 간단히 접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 분석의 경우 한 번 분석 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자체 판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국내총생산(GDP)과 수출에서 현대차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한 뒤 착시효과를 배제하면 한국 경제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순진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결론은 미션 임파서블. GDP는 부가가치의 합이다. GDP에서 삼성과 현대차의 매출을 빼는 단순작업이 아니라 수직계열화돼 있는 자회사와 수많은 협력업체의 매출과 순익을 모두 분석해야 가능한 숫자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대차와 삼성전자가 생산한 제품의 부가가치와 수많은 부품업체와의 거래관계를 다 따져봐야 한다. 수출도 해외 자회사를 통한 부분도 있어서 간단하지 않다.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접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위(?)에서 떨어진 ‘오더(order)’이기 때문이다. 기재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애초부터 체감경기지수라는 단일 지표를 개발하려고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체감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것을 정책당국이 확인할 수 있고, 국민들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체감경기 회복을 정책목표로 잡은 것 자체가 무리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민들 대부분은 어떤 경기상황에서도 자신이 경기회복의 혜택을 입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는다“며 “정치적으로 체감경기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위”라고 말했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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