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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굿이라도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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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금융부 기자) “굿이라도 해야 하나요. 2013년을 끝으로 더 이상 사건·사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정말 죽겠습니다.”

20일 KB금융지주 관계자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한 말입니다. KB금융은 핵심계열사인 국민은행을 위시해 2013년도 한해 ‘고난의 행군’을 했습니다. 3월에 KB금융의 한 임원이 사외이사들의 반대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하지 못한 데 불만을 품고 세계적인 주총안건 분석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에 내부 정보를 유출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5월부터 7월까지는 KB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의 수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지요. 최고경영자(CEO)후보에 모피아(재무부의 영문 약칭인 MOF와 마피아를 합친 단어) 출신 인사들이 대거 언급돼서입니다.

이후 좀 조용해지는가 싶었더니 9월에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이 불거졌습니다. 전 도쿄지점장이 부실기업등에 1700여억원의 부당대출을 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은 불법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지금도 검찰 조사중에 있습니다. 11월에는 국민은행 내부 직원이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90여억원을 횡령한 충격적인 사건도 터졌습니다.

날만한 사고가 한꺼번에 다 터지면서 KB지주 및 계열사 직원들은 마음고생이 컸지만 내심 ‘이제는 끝났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롯데카드, NH농협카드 등과 함께 KB국민카드가 고객정보 유출사건에 연루된 것입니다.

정말 사건·사고를 읊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네요. 그런데 KB금융 내부 관계자들은 “잘못은 했지만 억울한 측면도 많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국민주택채권 위조, 도쿄부당대출, 카드 고객정보 유출 등 개인이 마음 먹고 저지른 범죄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이런 ‘우연’들이 겹치는 것은 최근 KB금융이 악운을 만난 탓이니 ‘굿’이라도 해야한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반복되는 우연은 필연이라는 시각입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유독 불법적인 일이 KB금융에서 많이 일어나는 것을 ‘우연’이라고만 설명하는 일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말하더군요. 2001년 옛 주택은행과 옛 국민은행이 국민은행으로 통합된 이후 지금까지 국민은행과 KB금융그룹(2008년 출범)의 느슨한 내부통제와 예대마진에 의존한 영업관행, 경영진들의 정권에 줄대기 등이 합쳐진 작품이 최근 사고들로 나타난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정부가 당당히 KB금융을 혼낼 처지는 아닌 듯 합니다. KB지주의 CEO교체 시기마다 청와대 의중을 묻는 이가 많은 것은 정부 눈치를 상당히 본다는 뜻이 아닐까요. 정부가 민간금융회사에 대해 경영간섭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것으로 연결시켜도 무리는 없겠지요.

금융당국은 이번 카드 고객정보 유출로 “누구든 책임을 묻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KB금융에 대해 장기간 관치를 펼쳐온 정부는 어떻게 책임을 질 건지 궁금해지는 시점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