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오트(Talpiot)는 히브리어로 ‘최고 중의 최고’를 뜻합니다. 매년 최상위권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 중에서 50~60명을 부대원으로 뽑아 최고 명문인 히브리대에서 수학·컴퓨터공학 등 이공계 과목을 40개월 동안 공부시킵니다. 대학졸업 후에는 현역병 복무기간인 3년에 6년을 더한 총 9년간 ‘연구장교’로 의무복무합니다. 탈피오트 부대원들은 미사일 관련 기술과 정보 감청 기술 등 연구개발(R&D)를 하면서 이스라엘 국방력 강화에 힘이 되고 있습니다.
전역 후에도 이들은 이스라엘의 학계와 특유의 벤처 생태계를 이끌어갑니다. 유망 벤처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난리 입니다. 주요기업의 채용 공고에는 ‘탈피오트 출신 우대’라고 명시돼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2010년 수상자인 엘론 린덴스트라우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마리우스 나흐트 체크포인트 공동창업자 등이 탈피오트 출신 인재입니다.
작년 11월 한국경제신문의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전 총리는 “이스라엘에서 인재를 길러내는 곳은 군대”라며 “젊은이들이 군에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생활을 하며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고 기업가 정신을 기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군도 ‘한국판 탈피오트’ 준비에 한창입니다. 국방부는 오는 28일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와 정보보호전문부사관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교환할 예정입니다. 과학기술전문사관제도는 이공계 대학 2학년을 뽑아 3~4학년 동안 국방과학과 군사훈련 교육을 받게 하고 졸업 후에는 의무복무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공계 전문 ROTC’라고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에 비해 복무기간이 짧습니다. 사회에서 이공계 수요에 늘어나는 만큼 전역 후 이들의 진로도 탄탄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국판 탈피오트’가 이스라엘만큼 내실 있게 운영될진 의문이라고 합니다.
김형중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는 “우리보다 더한 전시(戰時)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군의 특수성을 잘 이해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탈피오트는 전문 사관학교가 없는 이스라엘에서 장교를 뽑기 위한 과정인 반면 한국엔 엘리트 장교를 뽑는 사관학교 제도가 따로 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들로 이뤄진 군 장성들이 별도의 엘리트 부대를 창설할 가능성이 낮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또 “항상 전쟁 태세에 있는 이스라엘 군은 하급자가 상관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인의 자율성이 확보돼 있다”며 “상명하복의 문화에 길들어 있는 우리 군에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없지만 당분간 연구 전문 부대의 창설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군이 국방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자체 연구 능력을 키우겠다는 목표를 가진 만큼 전향적인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판 탈피오트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주목됩니다.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