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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진작가 케나의 솔섬'을 대한항공이 배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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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문화부 기자) 영국의 세계적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61)의 풍경 사진은 흑백의 대조를 미묘하게 살려내 수묵화처럼 보입니다. 하얀 눈 위에 홀로 서 있는 고목 한 그루를 포착하거나 안개에 쌓인 듯한 야산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마치 에칭 같은 맛도 있지만 수묵화 느낌도 발견할 수 있어 지극히 동양적이지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서정적인 풍경을 흑백 사진으로 찍은 케나의 국내 개인전이 내달 23일까지 서울 팔판동 공근혜갤러리에서 펼쳐집니다. 케나는 처음엔 화가로 시작했다가 판화와 그래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사진으로 전향했지요. 그의 작품 속에서 에칭이나 판화, 수묵화 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일 겁니다.

‘동방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2011년부터 집중적으로 작업한 ‘신안’ 시리즈는 물론 일본의 홋카이도 시리즈,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계단식 차 밭 지역을 촬영한 작품을 걸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이미지 수정이 대세가 된 요즘도 케나는 아날로그를 고집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신안 프로젝트 역시 아날로그 작업이구요.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수 차례 그 곳을 방문해 홍도, 흑산도, 가거도, 만재도, 증도 등 남도의 각양각색의 섬들이 지니고 있는 빼어난 풍광 뿐만 아니라, 물 빠진 김 양식장의 늘어선 나무 장대나 물위에 떠 있는 스티로폼 부표들, 바다 한가운데의 전복 양식장, 거울처럼 반짝이는 염전 풍경 등을 사진에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케나는 2007년 삼척에서 ‘솔섬’이라는 작품을 촬영한 이후 대한항공이 동일 구도에서 사진을 찍어 광고에 활용했다는 이유로 저작권 소송을 벌이고 있습니다. 케나는 이와 관련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 심리로 열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구요.

그의 ‘솔섬’ 사진을 둘러싼 소송을 놓고 사진계 안팎에서도 저작권법 위반 여부에 대해 찬반 의견이 팽팽합니다. 통상 사진을 둘러싼 저작권 공방은 특정 사진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거나 임의로 사용해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에는 복제권 침해와 관련된 부분이어서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법원 판례에서는 “사진저작물은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돼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된다”고 밝히고 있어요.

일단 쟁점은 대한항공이 광고에 사용한 사진이 케나의 ‘솔섬’을 표절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인데 케나의 한국 측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는 “물에 비친 솔섬을 통해 물과 하늘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앵글은 쉽게 잡을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작품 내용으로, 솔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 케나의 독창적인 표현 기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해당 작품은 역동적인 구름과 태양의 빛이 어우러져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것으로 케나의 것과 전혀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지요. /kkk10@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