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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인사시스템은 '응답하라 1994'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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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지식사회부 기자) “오래된 경찰 인사평가시스템은 하루 빨리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경무관 이하 경찰 승진대상자 심사를 담당했던 경찰청 인사담당자가 한 말입니다. 올해 경찰 인사는 어느때보다 잡음이 많았습니다. 경찰 인사는 보통 치안정감-치안감-경무관-총경 등 순으로 내려오면서 진행됩니다. 보통 치안정감 인사 이후 1주일 간격으로 후속 인사가 발표나지만 올해는 치안정감 이후 계급 간 인사에 걸린 시간이 상당히 걸렸습니다.

지난달 3일 치안정감 인사 후 21일이 지나서 24일에야 치안감 인사가 있었죠. 이후 경무관과 총경 인사가 나기까지는 또 다시 16일이나 걸렸습니다. 시간이 급박해서였을까요? 새해 들어 지난 9일 오전 경무관 인사가 났고 같은 날 오후 총경 인사가 나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연출됐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이 청와대 등으로부터 인사 외압을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경찰청은 이에 대해 치안정감 이후 철도파업으로 인사평가가 늦어졌고 여기에 인사자료를 담은 PC(개인용 컴퓨터)가 고장 나서 인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물론 철도파업이라는 예기치 못한 현안의 발생으로 인사평가가 늦어진 것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PC 고장으로 경찰 인사가 늦어졌다는 부분은 얼마나 경찰의 인사평가시스템이 낙후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경찰청이 인사평가를 하기 위해 사용하는 PC는 2대에 불과합니다. 인사평가 시즌이 되면 경찰은 이 PC 2대를 조용한 작업실로 옮깁니다. 나름 공정성을 위해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인사평가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PC에서 사용되는 인사평가 시스템은 별도로 없습니다.

경찰은 엑셀과 워드프로세스 등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전국 인사대상 경찰들의 정보를 일일이 입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엑셀의 수식을 이용해 ‘근속연수’, ‘실적’ 등을 계산합니다. 엑셀 수식에 적용되는 기본 데이터의 양만 해도 엄청나지만 경찰들은 아직 이 정보를 인사 시즌에 직접 입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인사가 지연된 원인은 하드웨어인 PC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경찰청 인사담당자는 “PC를 옮기는 과정에서 PC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하드웨어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주된 원인은 프로그램”이라며 “프로그램의 수식 등이 꼬였고,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기존 정보를 열기 위해 호환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인사가 늦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기술적인 문제로 인사가 늦어진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입니다. 이 담당자는 “매년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이런 이유로 평가가 늦어졌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사실 이런 부분이 문제인 것은 알지만 전산망을 까는데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면서 “전산망을 까는 것이 맞는지 이렇게 직접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의 이같은 인사평가시스템은 1990년대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보기술(IT)업계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물론 공공기관들까지 인사평가 외에 많은 시스템을 전산화하고 있습니다. 한 대형 IT솔루션 업체 관계자도 “중소기업들도 인사평가시스템을 엑셀로 직접 입력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경찰 같은 대형 조직에 이런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갈수록 지능화되는 범죄에 첨단수사장비로 맞서고 있는 우리의 경찰입니다. 하지만 정작 내부의 시스템은 이렇게 21세기가 아닌 20세기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5.02.0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