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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꼈나 안베꼈나" 유리와 하이의 난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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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길 증권부 기자) A사는 작년 11월 초 특이한 금융상품을 내놨습니다. 요즘 같은 변동성 장세에서도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펀드’였죠. 구체적으로 3가지 전략을 사용합니다.

우선 롱쇼트 전략(저평가된 주식 현물을 사고 고평가된 선물을 팔아 절대 수익을 추구)을 기본으로 쓰되 향후 기업공개(IPO) 시장에 상장할 예정인 기업 중 상승 기대감이 높은 종목에도 투자합니다. 마지막으로 매월 말 주식에 투자한 다음 그 다음달 바로 매도하는 월말효과 전략(TOM)을 병용하지요.

A사와 경쟁 관계인 B사는 한달 반 이후인 작년 말 사실상 똑같은 펀드를 내놨습니다. ‘롱쇼트-IPO-월말효과’ 등 3가지 전략을 활용하는 중위험·중수익 펀드였죠. 매년 8% 이상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A사는 유리자산운용이고, B사는 하이자산운용입니다. 틈새 시장을 잘 공략하는 대표적인 중소 운용사들입니다.

먼저 이 상품을 선보인 유리운용은 발끈했습니다. 한 달여 빨리 상품을 내놨는데, 어떻게 똑같이 베낄 수 있느냐는 것이죠. 상품 이름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유리운용 펀드 이름은 ‘트리플 알파’, 하이운용은 ‘플러스 알파’를 각각 붙였지요.

문제는 유리운용이 이 상품 홍보를 거의 하지 않았던 반면 하이운용은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는 겁니다. 유리운용 측은 “일단 좋은 상품을 내놓고 성과만 좋으면 고객들이 알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이운용 측이 상품을 베끼고서 사과 한 마디 없는 것은 유감”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이운용의 입장은 다릅니다. 하이운용 관계자는 “자세히 알아보니 펀드 판매창구인 모 증권사에서 이런 구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기획 상품’이더라. 엄밀히 말하면 판매사의 아이디어인 것이다. 유리운용이 배타적 사용권 운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장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기아차가 박스카 쏘울을 내놨는데, 닛산 튜브와 비슷하다고 해서 기아차가 베꼈다고 말할 수 있느냐. 쏘울은 박스카의 한 종류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유리운용 측에서도 당초 아이디어가 판매사 쪽에서 나왔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구요.

각 금융 관련 단체에선 회원사간 창의성을 유도하기 위해 ‘배타적 사용권’을 자율적으로 부여합니다. 금융투자협회에선 1개월에서 최장 6개월까지 주지죠.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신상품 심의위원회에서 배타적 사용기간을 얼마로 할 지 결정합니다.

그런데 유리운용과 하이운용 측의 다툼은 누구 잘못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 아이디어 자체가 판매사에서 나왔으니까요. 배타적 사용권을 주장하기에도 이견이 나올 법 합니다. 물론 유리운용이 ‘최초’ 개발사인 것은 맞지만요.

투자자 입장에선 똑같은 구조의 두 상품이 수익률 차이를 얼마나 벌일 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투자 전략이 같아도 매수·매도 타이밍과 포트폴리오 구성, 보수 수준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