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국가 기간망 ‘스톱’사태로 인한 사회갈등 표출과 경제적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정치실종’이 원인인게 분명한 뒤늦은 이날 합의는 못내 아쉽기만 하다. 만만찮은 후유증도 예고된다. 잠정적으로 합의를 이뤘지만, ‘민영화’논란의 불씨는 코레일을 포함해 모든 공기업 개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경제적 피해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 2009년 9일간 파업의 피해규모가 5000억여원에 달했던 점을 고려하면, 1조원을 웃돌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새해를 불과 이틀 앞두고 ‘깜짝선물’이 전해진 막전막후 협상엔 단 2명의 의원이 등장한다. 건설교통위 소속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박기춘 의원이다. 2명 의원이 초당적 자세로, 일요일 심야에 협상력을 발휘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역으로 2명 의원이 나서면 될 일을 이 지경까지 끌고온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할까.
이번 협상과정을 재구성해봤다.
협상이 시작된 것은 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은철 철도노조 사무처장겸 대변인이 서울 여의도 대산빌딩 민주당사로 은신했을 때부터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중재방식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현실적으로 정부를 참여시킨 노(勞)·사(社)·정(政)의 중재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지난 22일 강경진압 당시 야당 당대표 자격으로 현장 중재에 나섰으나 ‘제3자’로 지켜보기만 하다 돌아왔다.
또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여러차례 회의를 소집했지만, ‘민영화’논란을 놓고 여야간 극명간 입장차로 중재시도가 번번이 무위에 그친 것도 눈으로 확인했다. 김 대표는 박기춘 사무총장을 조용히 불렀다. 그가 소관 상임위인 국토교통부 소속인데다,과거 원내 수석부대표와 원내대표 로서 뛰어난 협상력을 보인 것을 기억해서다. 김 대표는 “연말까지 파업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포괄적 협상권을 줬다.
박 총장은 28일 최 사무처장을 만나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자”고 설득했다.이어 “협상을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그냥 파업을 위한 싸움은 안 된다”는 당부도 했다. 둘은 마침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내 철도산업발전 소위원회를 설치할 경우 파업을 철회한다”는 잠정안에 합의했다. 박 총장은 여측 협상파트너로 김무성 의원을 지목하고, 접촉에 나섰다. 여야 협상이 번번이 결렬된 이유중 하나는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새누리당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박 총장은 “여당 내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으로 김 의원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둘은 예전 여당 원내대표(김 의원)와 야당 원내수석대표(박 총장)로 자주 협상테이블에 앉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친박 실세인 김 의원이라면 새누리당 지도부를 설득하고, 청와대와도 교감이 가능할 것이란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둘이 밤 9시께 만나 협의안을 만드는 데는 채 3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합의문 도출과정을 재구성해 본 것은 특별한 협상기술이나 각고의 협상노력이 숨어 있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단지, 두 의원은 국가적 중대사에 여야를 초월해 허심탄회하게 함께 해결책을 찾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파업을 풀기 위한 각계의 노력을 복기해보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최연혜 코레일 사장 등은 파업기간 내내 형식적인 교섭노력으로 시간만 떼웠다. 국회 관련 상임위인 국토교통위,환경노동위,안전행정위 등도 부처 장관의 현안보고를 듣고 중재를 시도했지만, 여야간 고성만 주고받는 파행으로 해결책은 고사하고 갈등만 키워나갔다. 이러면서 22일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날 파업사태의 극적 해결은 2명 의원의 협상력을 돋보이게 하지만, 동시에 여야 ‘정치실종’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이기도 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두 의원의 협상은 원내 지도부를 무시한 돌발행동”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실세에 의존한 구태정치의 재현이란 주장도 들린다. 김 의원이 충분히 사전 교감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 의원이 주도한 협상에 대해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눈앞의 분명한 결과물을 놓고도 이 딴식의 ‘평가와 반응’을 보이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주소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