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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에 대한 투자로 돈버는 3가지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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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금융부 기자) “구조조정 기업 투자로 돈 버는 비법 아세요?”

얼마전 식사 자리에서 한 은행장이 불쑥 묻더군요. “아니, 부실기업 투자는 피하는 게 상책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그는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손을 가로 저었다. “3가지만 알고 있으면 손쉽게 고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대박’의 비법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귀가 쫑긋해지더군요. 알다시피 STX에 이어 동양 한진해운 현대 등 덩치 큰 그룹들이 줄줄이 구조조정중인 상황이니까요. “잇따르는 부실 정리를 지켜 보니 감이 온다”며 그가 제시한 비법은 구조조정기업의 채권 투자였습니다. 위험이 큰 만큼 고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더군요.

하지만 그 정도야 누구나 아는 얘기 아니겠습니다. 문제는 회사가 발행한 채권의 만기가 돌아올 때까지 부실기업이 살아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지요. 떨떠름한 저의 반응을 보더니 그 은행장은 곧바로 ‘망하지 않을’ 부실기업을 찾는 3가지 노하우를 공개했습니다.

그의 풀어낸 첫번째 비법은 은행 대출이 많은 기업을 고르는 것입니다. 대출 보증같은 여신이 수천억~수조원에 달하는 기업은 감히 부도를 낼 수 없다는 얘기지요. 이른바 ‘대마불사’입니다.

듣고 나도 시큰둥 한 마음은 그대로더군요. 요즘이 어떤 세상입니까.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으며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진 게 벌써 지난 세기 말의 일 아니던가요.

제 생각을 읽었는지 그는 연이어 두번째 비법을 꺼냈습니다. 협력업체가 많으면 은행들도 왠만해선 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예컨대 거래기업이 수만여 개라면 부도시 사회적 파장이 커 살리는 방안을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중소기업들의 피해확대는 요즘 분위기에선 반사회적 처사로 매도당할 소지가 다분한 데 어느 은행장이 결단을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더군요.

‘그런 측면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전해 들은 마지막 비법에서 저는 시쳇말로 빵 터졌습니다. 다름 아닌 부실기업의 연고가 부산 경남권이면 ’망할 수 없는 3가지 조건’이 완성된다네요.

무슨 소리냐고요. 부산ㆍ경남권 의원들은 ‘부산당’이라 불릴 만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지역 이익을 챙기는 정서가 남달리 강하다는 얘기더군요. 일단 의원 숫자가 많고, 금융회사를 담당하는 정무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아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네요. 그 은행장도 국회로 호출 당해 ‘지역 민심이 들끓으니 알아서 지원하라’는 협박성 주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난감해 하더군요.

결국 그는 재테크 비법을 전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생존이 걸린 구조조정이라는 냉정한 시장에서조차 이권을 찾고 숟가락 올리려는 비뚤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농담에 버무려 ‘디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행중인 경남은행 매각전에서도 부산ㆍ경남권 의원들이 ‘BS지주의 인수에 반대한다’며 조세특례법 개정에 어깃장을 놓고 있네요.

‘안 망하는 부실기업’이란 상반된 단어의 조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한국적인 현실을 확인한 탓에 씁쓸한 뒷맛이 오래 남는 식사였습니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