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단연 화제는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전입니다. IB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해 가장 더러운 M&A 거래’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SK그룹 계열사인 로엔엔터테인먼트는 ‘멜론’으로 유명한 국내 최대 음원유통업체이자 아이유와 가인 등 인기가수를 보유한 연예기획사입니다. 증손자회사 보유를 규제한 공정거래법을 지키기 위해 SK그룹이 극비리에 매각을 추진했습니다. 최종 라운드에는 사모펀드(PEF)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AEP)와 칼라일 두 곳이 맞붙었습니다.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모회사인 SK플래닛이 어피니티와 칼라일로부터 최종 인수의사를 접수한 본입찰은 6월24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우선협상대상자는 거의 한 달 뒤인 7월18일에야 가려졌습니다. 본입찰로부터 일주일이면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되는 일반적인 M&A보다 3주 가량 시간이 더 걸린 셈입니다.
이유는 SK플래닛이 대한민국 M&A 역사에 길이 남을 수준의 프로그레시브딜을 진행했기 때문이랍니다. 프로그레시브딜이란 본입찰 이후 인수후보자에게 경쟁자의 인수가격을 직간접으로 흘려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어피니티에 “칼라일이 주당 1만5000원을 썼는데 가격을 더 높일 생각이 있느냐?” 묻고 어피니티가 가격을 올리면 다시 칼라일에 역으로 제안하는 식입니다.
인수할 회사의 가치를 다각도로 판단해서 최종 인수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본입찰인데 본입찰 이후 다시 더 높은 가격을 유도하는 프로그레시브딜은 위법적인 절차도 아니지만 보편적인 절차도 아닙니다. 일부 IB들은 매각자와 인수후보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하는 프로그레시브딜을 “돈 몇 푼에 영혼을 파는 짓”이라며 기피하기도 합니다.
프로그레시브딜을 한다고 해서 인수가격이 반드시 더 높아지는 것만도 아닙니다. 오히려 거래 자체를 무산시킬 위험도 존재합니다. 매각 측에서 5차례 이상 수정제안을 요구하면 인수후보들끼리 ‘차라리 다같이 보이콧해서 M&A를 무산시켜 버리자’하고 합의를 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도 SK플래닛은 무려 15차례에 걸쳐 어피니티와 칼라일의 수정제안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왜 어피니티와 칼라일은 SK플래닛에 이토록 끌려다닌 걸까요? IB업계에선 SK플래닛이 이철주 어피니티 대표와 이상현 칼라일 대표의 역학관계를 절묘하게 이용한 덕분이라고 분석합니다.
원래 이상현 대표는 어피니티에서 이철주 대표와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습니다. 어피니티에선 한 살 어린 이철주 대표가 선임이었지만 이상현 대표가 2011년 칼라일 대표로 옮기면서 대등한 위치가 됐습니다. SK는 이러한 두 PEF 대표의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입니다.
물론 ‘가장 더러운 딜’은 인수자 입장에서의 평가이구요, 매각자인 SK 입장에선 최대한 비싼 값을 받아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승자가 된 어피니티는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주당 2만원에 샀습니다. 주식시장에서 거래된 가격보다 5500원이나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참여했던 IB업계 관계자가 “살다살다 이런 거래는 처음 본다”며 “최종 승자는 SK”라고 말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