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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근형, 꽃보다 아름다운 어른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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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영 한경 텐아시아 기자) 배우 박근형(73)과의 만남은 ‘노장불패’를 목격한 순간이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박근형이라는 배우를 그의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에서 느껴지는 위엄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근엄한 그의 표정 속에서 보들보들한 로맨스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를 좀 더 알고 싶어진 누군가는 오늘날 날고 기는 배우들보다 더 화려했던 꽃미남 스타 박근형의 전성기까지도 들추어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2013년이라는 시간 속에 박근형은 재해석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의미있는 작품이 다가왔으니, 현재 출연 중인 MBC 주말드라마 ‘사랑해서 남주나’이다.

17일 경기도 일산 MBC에서 만난 박근형이 힘을 주어 “‘사랑해서 남주나’에서 정현수 역을 맡은 박근형입니다”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때 그 문장은 은근한 자부심을 품고 있기도 했다. 황혼의 로맨스를 그리는 정현수라는 배역은 반 백년을 배우로 산 이에게도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나이 먹고 트렌디 드라마의 뒤편에 밀려 있다 최초로 황혼기에 들어선 사람들의 로맨스를 연기하게 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저도 애정 드라마를 많이 해보았는데, 나이 먹어서는 처음이지요. 젊은 시절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표현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요즘 장년층, 노년층 분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분들은 아마도 젊은 시절과 생각 차이는 별반 없을 텐데 사회적인 구조 탓에 자기 표현을 못하고 살았기에 아무래도 어려웠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최현경 작가가 그런 부분을 건드려주고 있습니다. 고답적 생활만 하다가 최초로 자기 속내를 드러내게 되고, 꽁꽁 얼어붙은 가정이 한 여자의 힘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어렵습니다. 많이 힘듭니다. 하지만 여러 조언도 서로 해주며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형과 함께 황혼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배우 차화연(52) 역시 이 대목에 자부심이 상당했다. 그는 “통속적인 중년 멜로는 재미없죠. 순수하면서도 고루하지 않는 중년의 러브라인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라고 곁들였다.

이들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 이상엽(30)은 “외국 영화에서 보면 중년 배우들의 로맨스도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나요? 한국에는 많이 없었지만, 지금 저희는 곁에서 두 선배님이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좋아요. 젊은 사람들의 것과 다르게 가볍지 않고 중후한 맛이 있으면서도 달달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달달함을 저희도 좀 배우자 하고 있어요. 제 연기보다 두 분의 로맨스가 궁금해서 드라마를 볼 때도 있어요”라며 선배들의 로맨스에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박근형은 또 아직 고민이 많은 후배들에게 어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뼈와 살로 남을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극과 캐릭터의 일관성 및 캐릭터의 성장을 표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고, 여기에 젊은 배우들 이상엽, 홍수현(32), 신다은(28), 서지석(32)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신구 배우들의 열띤 연기토론의 현장이 연출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날 인터뷰 말미 박근형은 “젊은 친구들에게 정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연출의 범위를 넘지 않은 선에서 조언을 하곤 하지요. 제가 TV만 45년, 연극은 56년째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적으로 칭찬을 많이 받는데 걱정되는 지점이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전제작제로 가야 해요. 그래야 한 역할을 가지고 배우도 오래 숙고하고 서로 모여 이야기하며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러면 완벽에 가까운 창작물이 나오게 됩니다. TV 연기가 예전에는 영화에 가깝다고 했지만, 요즘은 연극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연기를 영화적인 감독의 연기가 아니라 무대 예술에서 비롯된 연기로 작품을 완성시키면 더 많은 감동이 있으리라 봅니다”라며 쪽대본으로 설명되는 열악한 드라마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것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배려이자 가르침이기도 했다.

또 그는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막장 드라마에 대해 “여러 장르, 부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내가 하는 것에 반대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만 생각 말고 나름 탈바꿈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라면서도 “하지만 한 가족이 두루 볼 수 있는 작품은 ‘사랑해서 남주나’와 같은 작품이 최초일 것입니다. 장르는 다양할 수 있지요. 다만 상업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점은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지자 이를 전환시키기 위한 가벼운 질문도 등장했다. 박근형이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 tvN ‘꽃보다 할배’에서 혹시 짐꾼으로 이상엽, 서지석 중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는 질문이 그것이었다. 박근형은 “어찌 그런 곤란한 질문을”이라면서도 또 한 번 깊이 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서지석”을 꼽더니, “이상엽은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이것저것 다 받아들일 수 있는데, 서지석은 외골수라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후배들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들의 기질을 파악하여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진정한 선배의 모습이 느껴진 대답이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후배들이 걸어가는 길에 나침반이 되어주는 선배와 그런 선배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존경으로 듣는 후배들로 꽉 차 있는 현장의 풍경은 참 따뜻했다. /sypov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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