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어디로 출근하시는지만 말씀해주시면 안될까요?” (기자들)
지난 16일 오후 11시30분께, 서울 대치동 미도아파트 어느 동 복도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이날 KT 회장으로 내정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자택으로 들어가려는데 기자 두 명이 앞을 막은 겁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황 회장 내정자는 “이렇게 추운데 왜들 기다렸느냐”며 “아까 (기자들이) 문자 보낸 것 다 봤는데, 그때가 몇신데 지금까지 있었냐”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 미안하지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며 KT개혁방안은 물론이고 회장 내정 소감까지, 어떤 질문에도 답을 않고 말을 아꼈습니다. 세 시간이 넘는 ‘뻗치기’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두 기자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미도아파트 모 동 앞에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8시. 오후 7시께 KT 회장 내정자가 발표된 지 한 시간 만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6층 자택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뻗치기를 시작했습니다. 황 회장 내정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거나, 적어도 ‘멘트’를 따기 위해섭니다. 영하를 밑도는 날씨에 손을 비벼가며 기다리다 보니 오후 9시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기자가 차례로 왔습니다.
이후 조선일보 등 주요 매체 기자 10여명이 동 바깥에 속속 몰려들어 떨며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딸과 아내가 들어왔지만, 황 회장 내정자는 오후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오지 않는 것 아니냐” “지방에 간다고 하더라” “성균관대에 적을 두고 있으니 학교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았습니다.
알고보니 황 회장 내정자는 내정 발표가 난 뒤 저녁식사를 마치고 서울 강남 팔레스 호텔에서 사외이사들과 회동해 향후 경영방향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회동은 밤 10시 조금 넘겨 끝났지만 대치동 집으로 바로 귀가하지 않고 뻗치기 중인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늦게 귀가한 듯합니다. 사외이사 가운데 한 명(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현락 CEO 추천위원장으로 추정)이 황 회장 내정자에게 “어렵겠지만, 기자들 전화는 받지도 말고 집 앞에 기자들이 와 있어도 얘기하지 말라”며 “언론사를 차별하면 추후 힘들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황 회장 내정자는 아무 대답도 않은 대신 “명함은 다 받아두겠다”며 “이렇게 얼굴을 직접 봤으니, 꼭 기억하고 다음에 같이 맛있는 것이라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자의 명함을 받아들더니 “한국경제는 밑에서도 받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이날 IT과학부에서는 임근호, 김보영 두 명의 기자가 현장에서 기다렸습니다. 황 회장 내정자에게 “두 명이 왔다”고 하자 “이렇게 추운데, 기자들이 다 바쁠 텐데”라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