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거액이 오가는 파생상품시장은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의 대명사죠. 순간의 판단착오로 개인 뿐만 아니라 대형 금융사 전체가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1995년 베어링스은행의 싱가포르 주재 파생상품 거래 담당 직원이던 닉 리슨은 불법거래를 통해 14억달러의 손실을 끼쳐 232년 전통의 영국 대형은행이 파산한 게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사실 뉴욕 월가나 런던 시티에선 단순 주문실수보다는 스타 매니저, 혹은 실적 부담을 느낀 내부자에 의한 의도적 조작이 파국으로 이어진 경우가 더 많습니다.
2012년 JP모간에 90억달러 손실을 안긴 ‘런던 고래’사건이나 2008년 선물 거래로 72억달러 손실을 소시에테제네랄에 안긴 33세 트레이더 제롬 케르비엘이 그런 경우입니다. 1달러=1000원으로 보면 각각 9조원, 7조원이 넘는 손실입니다. 2011년 UBS 런던 지점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을 담당했던 크웨쿠 아도볼리도 회사 승인 없이 무단으로 한국돈으론 2조원이 넘는 14억 파운드 손해를 입혔지요.
국내의 사례는 어떨까요. 국내의 경우엔 ‘초보적’인 입력 실수가 ‘천문학적인’ 피해로 이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2012년 8월1일엔 현대증권 자기계좌에서 접속매매시간 중(09:06:04~09:17:08) 알고리즘 시스템 오류 추정되는 코스피200선물 매수·매도호가가 유입돼 가격 급등락을 수반하면서 약 29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었습니다. 2011년1월13일엔 골든브릿지증권 자기계좌에서 시가단일가호가시간 중(08:00:17~08:00:19) 코스피200옵션과 코스피200선물을 혼동하여 코스피200선물에 총 56,000계약의 매도호가를 제출하여 약 2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생겼구요.
그보다 앞선 2010년 2월9일엔 미래에셋증권 자기계좌에서 접속매매시간 중(09:00:00) 미국달러선물 스프레드(’10.2월-3월) 종목에 착오로 고가 매수호가(80원, 0.8원 의향)를 제출하여 약 12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올해는 1월 홍콩계 헤지펀드 이클립스퓨처스가 KB투자증권을 통해 코스피200선물 주문을 하다가 실수해 190억원대 손실이 발생한 사건과 지난 6월 KTB투자증권의 코스피200선물 약 7200계약 주문실수 건도 알고리즘 매매와 연관돼 있다고 합니다.
결정판은 지난 12일 한맥투자증권이 옵션상품 주문을 낸 컴퓨터에 ‘이자율 설정관련 수치’를 잘못 입력하면서 발생했습니다. 1분도 안돼 3만7902건, 5만7934계약이 체결되면서 46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입니다. 비싼 가격에 옵션매수 계약이, 싼 가격에 옵션매도 계약이 이뤄진 것이지요.
외국계 증권사들은 비정상적으로 싸게 나오거나, 비싸게 사겠다는 주문에도 대비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던 터라 한맥증권이 실수로 주문을 내자마자 바로 사버렸다고 하는 군요.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악질 매니저 탓에 사고가 나고 회사가 휘청인 적은 없습니다. 대신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할 정로도 초보적인 실수로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남은 경우가 많네요. 위안을 가져야 할지, 한숨을 쉬어야 할지 고민되는 한국 파생상품 시장의 현주소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