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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 자회사 허용 방침에 복잡해진 병원들의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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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 경제부 기자) 정부가 의료법인에 대해 영리 목적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한 가운데 이미 자회사 설립이 가능한 학교법인의 자회사 운영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생겨날 의료법인 자회사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의료법인은 자회사 설립은 물론 벤처캐피탈 등의 투자도 받을 수 없지만 그동안 대학병원을 소유한 학교법인은 자유롭게 자회사를 설립하고 외부 투자도 받아 왔습니다.

서울대·연세대병원은 통신사나 의료기기 기업 등과 합작,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고, 명지병원은 자회사를 해외 진출 ‘교두보’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교법인은 자회사에 병원 일감을 모두 몰아주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분 문제로 인한 경영권 분쟁 사례도 있네요.

대표적인 ‘좋은 예’ 가운데 하나는 SK텔레콤과 손을 잡고 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한 서울대병원입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월 SK텔레콤과 합작으로 헬스커넥트를 설립,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TC)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건강검진 결과와 식습관, 운동량 등 개인 실생활 패턴을 다각적으로 분석, 건강관리 해법을 제공하는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프로그램 ‘헬스온’은 이미 시장에 나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연세대병원도 KT와 손잡고 ‘후헬스케어’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e헬스 상용화 등을 추진 중 입니다.

외국에서도 좋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은 메디컬 로봇기업인 큐렉소와 손을 잡고 차세대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병원이 무슨 로봇을 개발하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이 로봇은 세계 유일의 인공관절 수술 의료로봇입니다. ‘로보닥(robodoc)’이라고 부르는데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활용해 다른 분야의 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또 존스홉킨스병원은 해외에 진출할 때 합작법인을 설립, 투자자를 모집한 뒤 이 회사에 병원의 운영을 맡기고 있습니다.

관동의대 명지병원도 러시아 국립모자병원과 합작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명지국제건강검진 헬스케어 센터를 개설하고 지난해 8월부터 원격 화상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공급하는 자회사를 설립해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다면 박근혜 정부가 내건 ‘경제민주화’에 배치될 것이란 지적도 있습니다.

연세대병원의 의약품 공급 자회사 ‘안연케어’가 대표적입니다. 안연케어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원내처방 의약품을 독점 공급하는 도매업체로, 연세재단이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자회사입니다. 확실한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 적정 마진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2011회계연도에 매출 2278억원, 19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의료업계에서는 비영리 법인인 학교법인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익을 독점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정부는 결국 지난해 6월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의약품 도매상은 특수 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에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고 법을 바꿨습니다. 연세대는 안연케어와 세브란스병원과의 특수 관계를 끊기 위해 경영권과 지분 51%를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의료법인이 출자하는 자회사 지분에 대한 ‘교통정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분을 두고 경영권 다툼을 하는 ‘나쁜 예’도 있습니다. 재단법인 인석장학회는 경기도 여주골프클럽의 지분을 60% 소유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소액주주의 몫이죠. 그런데 인석장학회는 재단의 본래 목적인 장학사업보다는 골프장 운영에 치중하고, 재단 간부의 학교 동창, 법조인, 기타 친·인척을 골프장 요직에 앉히면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급기야 소액주주들은 인석장학회가 골프장 경영권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의료법인 자회사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모회사인 의료법인에 손해를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