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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딴 기업들 좌초 속에 한신평이 웃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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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증권부 기자) 국내에는 3대 신용평가회사들이 있습니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옛 한국신용정보)가 그들입니다.

1980년대 초중반 나란히 설립(한기평 1983년, 한신평 1985년, 한신정 1986년)된 이들 3대 신평사들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 평가 분야에서 경쟁해 오면서 시장을 삼등분 해 왔습니다.

국내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할 때 이들 세 곳의 신평사 중 두곳으로부터 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신평 3사들의 기업 고객들은 구조적으로 겹치게 되는 이유죠.

혹시라도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이 부도라도 나게 되면, 이 부도 기업에 대해 등급을 부여했던 최소 두곳의 신평사들은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투자적격(BBB-급 이상) 신용등급을 줬던 기업이 갑자기 부도가 나면, 신평사들은 “등급을 잘못 줬다”는 비판을 받곤 합니다.

그동안 이런 비판은 특정 신평사에게 집중됐다기 보다는 업계 전체가 받았습니다. 3개 신평사 중 2개 신평사가 1개 회사채 발행 기업에 등급을 부여하는 특성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기업들이 연달아 도산하게 되면, 신평 3사는 너나할 것 없이 부도 기업 중 일부라도 등급을 부여했던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만 놓고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까지 대기업들이 연달아 좌초했습니다. 작년 9월 웅진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한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STX그룹, 올 하반기에는 동양그룹과 경남기업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습니다.

한신평은 이들 기업들이 좌초하기 직전에 모두 신용등급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한기평과 나이스신평만이 이들에게 등급을 줬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4개 그룹이 연달아 부도났음에도 신평사 한 곳만 유독 등급을 제시하지 않았던 경우는 이번이 처음 같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한신평은 웅진그룹이 A급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 “신용등급 뻥튀기가 심하다”는 비판이 나올 때도, 올 하반기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투자자 수만명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가 “신용등급 뒷북 조정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는 비난이 제기됐을 때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에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신평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한 결과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한신평 관계자는 “재무상황 악화 등을 빨리 반영해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하다 보니 한계기업들이 한신평과 계약을 끊었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부도기업들에 대해 등급을 부여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신평사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한신평은 전통적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기업에 대해선 등급을 빨리 올리고 악화되는 기업은 빨리 내리는 경향이 강했다”며 “리스크 관리 능력보다는 이런 ‘발빠른 처신’이 작년 하반기 이후 부도난 기업들에 대해 등급을 부여하지 않은 근본 이유”라고 지적했습니다.

누구 말이 더 맞다고 손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평가는 엇갈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작년 하반기 이후 줄줄이 기업이 좌초하는 와중에 한신평이 다른 신평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에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혹시 몇몇 기업들이 추가로 넘어지게 되더라도 한신평은 계속 위기에서 비켜서 있을까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9.2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