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청와대 참모진 인물탐구(3)=유민봉 국정기획 수석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도병욱 정치부 기자)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새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만들었던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당시 인수위 국정기획조정 분과 간사)이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은 “버릴 카드를 만들어라”였다고 합니다. 특히 새누리당에서 인수위로 파견된 인사들은 대부분 “어차피 야당에서 반대할 경우 몇 가지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기해도 될 이슈를 만들어서 협상 카드로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유 수석은 이런 조언을 들을 때마다 “제가 교수(성균관대)를 하다가 인수위에 왔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그렇게 전략적으로 행동하면 안 됩니다”라고 물리쳤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를 사석에서 만나 ‘버릴 카드’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제가 전략적으로 만들어봐야 박근혜 대통령(당시 당선인)께서 반대하셨을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이 유 수석의 이런 점을 좋아한다고 귀띔합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인사는 크게 이정현 홍보수석 스타일와 유민봉 수석 스타일로 나뉜다”며 “유 수석은 세속에 찌들지 않고, 문학소년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청와대 참모들은 유 수석이 그 누구보다 박 대통령을 오래 지켜봤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유 수석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인수위원으로 내정되면서인데, 사실 그는 박 대통령과 10년 전부터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전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의 소개로 박 대통령의 ‘개인교사’역할을 했습니다. 신 교수가 1호 교사, 유 수석이 2호 교사였다고 하네요.

유 수석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오랜 인연이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이 그의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도 청와대 안팎에서 들려오는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유 수석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10일만에 완성시켰다고 하는데요, ‘이명박 인수위’ 때 걸린 기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 수석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발표된 1월15일에도 화제가 됐는데, 약 40분 동안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메모지 하나 보지 않고 막힘없이 답변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불통 브리핑’ 때문에 윤창중 당시 인수위 대변인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던 차에 유 수석의 청산유수 답변은 취재진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유 수석이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은 관료나 정치인과는 다소 다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관료나 정치인들보다 시야가 넓다는 평가부터 너무 뜬구름 잡는 말만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청와대 직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유 수석은 어떤 문제를 접할 때, 그 문제가 발생한 배경과 진행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다고 합니다. 빠른 일처리를 원하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너무 태평하게 움직인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호평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올해초 창조경제에 대한 논란이 뜨거울 때 유 수석은 “어떤 개념을 쓸 때는 그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창조경제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런 과정 없이 공개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의미가 모호해지고, 이해를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그의 업무 처리 방식을 보여주는 단면이겠네요.

그의 업무 처리 방식과 관련해 청와대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소연 하는 부분은 ‘피드백 없는 보고서’입니다. 통상 팀장급 이상의 관료들은 직원들이 보고서를 올리면, 그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곤 합니다. 그런데 유 수석은 청와대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수정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합니다.

청와대 직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보고서가 어떤 모습으로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 자신의 보고서에서 어떤 점을 수정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한 청와대 행정관은 “피드백을 하지 않고, 보고서에 점수만 매기는 교수 스타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유 수석의 사무실에 있는 ‘브레인스토밍 게시판’도 그를 둘러싼 화제 중 하나입니다. 유 수석은 사무실 벽 하나를 자유롭게 필기할 수 있게 만들어 놓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 한다고 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개념도를 그리기도 한다네요.

여담으로 유 수석의 ‘도인’같은 면모도 소개하겠습니다. 사석에서 만나 수염을 기르는 이유를 묻자 유 수석은 “산은 날카로운 골산(骨山)과 부드러운 육산(肉山)이 있는데, 제 관상은 골산에 가깝습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스님이 수염으로 조림(造林·숲을 조성함)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수염을 기르게 됐습니다”고 답하더군요.

일이 많을 텐데 어떻게 다 소화하냐고 질문했더니 “참선을 하면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머릿 속에 있는 잡생각을 모두 지우고, 현재만 생각하는 훈련을 합니다. 이를 ‘즉(卽)한다’고 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이런 유 수석은 언제까지 박 대통령을 보좌할까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 그를 따로 만나 물었습니다. “제 집중력은 2년이 한계입니다. 어떤 일이든 2년 이상 한 적이 없어요. 특히 청와대 수석은 즐겁게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책임감에 하는 일이라, 2년 이상 하기 힘들 것 같네요”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습니다. / dodo@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6.2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