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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릭'정치...명분에 품격을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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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정치는 말이다. 말을 통해 진의를 전달하고, 상대를 설득하는게 바로 정치다. 정치행위에서 말은 도구이자 수단인 셈이다. 안타깝게 우리정치권에서 주고받는 말은 거칠고 험악하다. 말의 품격을 높여 정치를 세련되게 하는 도구가 바로 ‘레토릭(rhetoric·수사학)’이다. 그래서 타고난 언변에 철학을 갖춘 정치인은 시의적절한 레토릭을 통해 정치의 멋과 맛을 녹여낼 줄 안다. 또 직설화법으론 차마 거론하기 민망한 사안에 대해 은유적 레토릭을 동원, 상대를 궁지로 모는데도 능숙하다. ‘명분’에 ‘품격’을 더하는게 바로 ‘레토릭 정치’이다.

#1 본질은 뒷전,‘레토릭’이 승부 가른다

올해 여야는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문제를 놓고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다. 1년 가까이 지났지만,아직도 그 끝이 어딜지 짐작도 할 수 없다. 충분히 공세적 스탠스를 취할 수 있었던 민주당을 궁지로 몬 것은 대선개입 공방을 ‘대선불복 프레임’에 가둬 버린 새누리당의 전략이 주효해서다. ‘대선불복’은 패자의 변명, 특히 승복하지 않은 태도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정서를 활용한 매우 효과적인 ‘레토릭’이었다. 민주당은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났던 대선개입 증거들에도 불구, “대선불복 하겠다는 거냐”는 새누리당의 반격에 번번이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이런 민주당이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은 ‘헌법불복’카드를 꺼내든 후부터다. ‘헌법불복’은 올해 여야 대치정국의 전환점이 된 키워드이기도 하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대선후보 누구에게 유리했는지 여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최고규범인 헌법을 위배한게 문제의 본질이란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2 원혜영 의원의 청와대의 ‘불통’풍자

박근혜 대통령 국회시정연설 다음날인 11월 19일 대정부 질의을 할때다.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불러 세웠다. 그는 정총리에게 “‘적자생존’의 뜻을 아시냐?”물었다. 평소의 순진한 표정을 지은채 정 총리는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 살아남는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원그대로의 ‘적자생존(適者生存)’을 답한 것이다. 원 의원은 “원래는 그런 뜻인데...최근엔 이 말이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면서 자료사진을 봐 줄 것을 요청했다. 청와대 회의장면이다. 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만 고개를 들고 있고, 나머지 국무위원과 비서관 등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한자’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무회의건, 수석비서관회의건 청와대 회의풍경은 한결같다.‘적는 자 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현장이다. 원 의원은 정총리에게 “이런 모습이 올바른 회의라고 생각하냐, 이렇게 회의해서 창조경제 할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3 ‘셋트정치’의 함정에 빠진 민주당

최근 만난 문재인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고언을 부탁하자 “현재 여건에서 잘하고 있다”며 여러차례 손사레를 쳤다. 거듭 아쉬운점을 부탁하자 마지못해 “아름답게 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중진의원도 “어쩔수 없는 사안에 대해 ‘손절매’를 못한다”고 지적했다.

소수당으로서 한계 탓도 있겠지만, 민주당은 대치정국에서 여러차례 헛발질을 했다는게 일부 의원들의 자기반성이다. 대표적인 것이 황찬연 감사원장의 인준안을 문형표 복지부장관 후보자 해임과 연계 시킨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일반 국민들에게는 크게 하자 없는 감사원장에 대한 대통령 임명권을 훼손시킬려는 불순한 의도로 ‘생떼’를 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이로 인해, 특별검사제와 국정원 개혁특별위원회를 함께 요구하는 것이나, 내년 예산안과 ‘양특’수용을 연계 시키는 것 등도 명분을 얻지 못하고 자충수로 작용하는 것 같다.새누리당은 사안마다 엮을려는 민주당의 협상태도를 ‘셋트정치’로 조롱했다.

#4 박지원 의원의 ‘촌철살인’형 레토릭

박지원 의원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말빨’이 좋다. 정치적 이슈가 생길때마다 그가 툭툭 던지는 말은 사안의 맥을 짚어 내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민주당 지도부는 안철수 의원의 정치행보를 본격화하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 의원이 신당창당에 나서면 가뜩이나 열세인 야권을 분열시킬 여지가 많다. 더 현실적 고민은 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의 신당 합류 가능성이다.하지만, 인력누수를 막기 위한 ‘집안단속’엔 별 뾰족한 수도 없다는게 지도부의 딜레마다. 최고 중진회의 등에서는 ’안철수 신당’합류에 거론된 인사와 이를 지적하는 의원간 언쟁을 벌이는 일도 잦다.

박 의원은 안철수 신당에 호감을 갖고 있거나, 참여를 저울질하는 모든 인사를 싸잡아 ‘기웃인사’로 정의했다. 당적을 바꾼 기존의 ‘철새’와는 다르지만, ‘줏대’없는 ‘기웃인사’들은 신당의 ‘코드’와 맞을리 없다는 정치적 함의까지 내포했다. 박지원의 레토릭이 집안단속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5 ‘친박’의원의 근접본능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원내수석부대표)은 ‘친박’핵심으로 사석에서는 대통령을 ‘누나’로 부르는 것으로 전해진다.(본인은 이것이 와전됐고, 한선교 의원만이 ‘누나’로 부른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은 여야대표회담과 시정연설을 위해 박 대통령이 두차례 국회를 방문했을때마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친박’실세임을 과시했다. 지난달 18일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차 방문했을때는 의전을 맡은 정진석 국회사무총장과 윤 의원이 대통령 영접을 놓고 ‘몸 신경전’을 벌인게 카메라에 잡혔다. 정 사무총장이 대통령에게 접근을 시도하는 윤 의원의 허리쪽에 손을 갖다대며 밀어낸 것이다.

나중에 정 사무총장은 “윤 의원이 영접 프로토콜을 무시하고 들이대 제 어깨가 VIP와 부딪힐 뻔한 상황이었다”며 “윤의원, 다음부터 함부로 들이대지 말고 국회 의전을 존중해주세요”라고 트윗글을 남겼다.

민주당은 “권력의 크기는 권력자와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한다는 정가속설을 확인시키는 장면이었다”며 “대통령을 향한 꼴사나운 ‘근접경쟁’은 한편의 코미디였다”고 비꼬았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2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