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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에 '한방'이 사라져 간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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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윤 증권부 기자) 작년에 주식시장에서 ‘전차(電車)군단’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전자(삼성전자)와 자동차(현대차 기아차) 두 업종만 유독 잘 나가서 생긴 말입니다. 올해가 되니 이 말이 더욱 피부에 와닿는 것 같습니다. STX그룹 동양그룹 등 업황이 안 좋은 산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하나 둘 곤경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해운업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최근 국내 해운업체에서 일하는 두 분을 점심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상무였고, 나머지 한 분은 2년전 이 회사에 입사한 ‘새내기 사원’이었습니다. 대화 도중 이 상무는 종종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에 잠기곤 했습니다. 정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하기 힘든 ‘좋은 일들(?)’이 많았더군요.

그 얘기를 들은 기자는 옆자리에 새내기 사원에게 “2년 전에 입사하셨으니 해운업이 좋은 시절을 한 번도 경험 못하셨겠네요”라고 물었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죠”라고 대답하는 신입사원에게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해운업은 ‘한 방’이 있지 않습니까. 일단 업황이 돌아서기 시작하면 떼돈을 버는 게 해운업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상무는 “해운업은 원래 호황기와 불황기가 분명히 구분되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분류됐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 같지도 않다”고 반론을 펼쳤습니다. 새내기 사원 입장에선 실망스러울 법한 얘기인데, 자세히 들어보니 근거가 꽤 탄탄한 것 같았습니다. 그 상무가 해운업의 경기 사이클이 사라져간다라고 얘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다 알고 계시겠지만 첫번째 이유는 공급과잉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유가 보다 구체적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 직전까지 세계 해운업계에서는 ‘연비’가 화두였다고 합니다. 자동차처럼 컨테이너선 벌크선 같은 배도 연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한 게 그 배경이었던것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 해운사들은 앞다퉈 연비가 좋은 배를 발주했고, 그때 발주했던 배들이 2010년 이후 앞다퉈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연비’ 배들의 투입 속도보다 ‘저연비’ 배들의 퇴출 속도가 훨씬 더뎌 해운시장에 공급과잉 현상이 심각해졌다는 것이 이 상무의 설명이었습니다.

공급과잉으로 업황이 악화되면 자연스레 경쟁력을 상실한 해운사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이로 인해 공급과잉이 해소되는 것이 시장경제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해운업에서는 이런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해운업은 국가안보와 연관돼 있어서 각국 정부들이 알게 모르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특정 해운사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그 해운사가 보유한 배를 다른 해운사가 사 가기 때문에 역시 공급과잉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합니다.

세번째 이유는 현대중공업 같은 글로벌 조선업체들의 선박건조 속도가 과거에 비해 엄청 빨라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대략 2~3년에 걸쳐 만들던 배를 요즘은 1년이면 뚝딱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공급’을 결정짓는 배가 금방 만들어지다 보니 설령 공급이 잠깐 부족해 해운경기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해운사들에는 ‘큰손’ 고객 중 하나인 월마트 까르푸 같은 글로벌 유통 업체들이 새로운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해운업은 연간으로 따지면 10~11월 정도가 ‘반짝 특수’를 누리는 성수기였다고 합니다. 세계 각지에 나가있는 유통업체들이 연말 쇼핑 시즌에 대비해 이 기간에 물건을 많이 실어 나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해운 운임도 이 기간에는 반짝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이들 유통업체들이 10~11월이 아니라 해운 운임이 쌀 때 미리 물건을 실어 날라놨다가 연말에 팔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해운업의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이 떠오르네요. 경우에 따라선 회사 내부자가 회사의 미래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있는 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 해운사들이 다시 승승장구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해운업황이 좋다는 건 우리 경제가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확실한 징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