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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분양팀장 "잘 팔려도 걱정, 안 팔려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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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형 건설부동산부 기자) 최근 서울의 한 분양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만난 한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부 팀장은 기자에게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표현의 기사는 가급적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최근 주택시장 침체로 분양 성공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만큼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확실한 무기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이 팀장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높은 청약 경쟁률로 분양에 성공하면 당장 고위 경영진에서 “신문 기사를 들이대며 헐값에 내놓아 분양에 성공한 것 아니냐, 더 비싸게 받았으면 회사 이익이 커졌을 것 아니냐”는 질책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건설사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어떻게 되기는요,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를 고집하다가 분양에 실패한 것 아니냐’고 또 다시 불려가서 혼나야죠.”

건설사들이 이 처럼 분양가 책정에 민감한 것은 분양가가 조금만 달라져도 회사 손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3.3㎡당(1평) 10만원씩만 분양가를 올린다고 가정할 경우, 전용면적 84㎡(통상 32평) 아파트 1가구 가격은 320만원 인상됩니다. 1000가구 단지라면 건설사는 32억원의 추가이익을 낼 수 있는 셈이죠. 최근 청약자들이 몰리며 분양 성공이 잇따르고 있는 위례신도시의 경우에도 올해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분양한 단지들의 분양가가 3.3㎡당 수십 만원 높은 수준입니다. 잘 팔릴 것 같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은근슬쩍 분양가를 올렸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는 분양가를 높이다 보면 미분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업체들은 분양가를 확정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일반적으로 대형 건설사들은 주택사업부 내에 시공 관련 부서와 마케팅 부서 관계자들이 수차례 회의를 거쳐 분양가를 결정합니다. 토지비와 시공비 등 조성원가 외에 인근 단지 시세, 시장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지요.

최종 분양가는 ‘분양가 상한제’에 따라 해당 지방자치단체 심의를 거쳐 결정되지만 최근엔 대부분 심의 가격 이하로 분양가를 확정하기 때문에 상한제 규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중견 주택업체들은 대부분 대주주인 회장들이 분양가를 결정합니다. 3.3㎡당 10만원 단위까지는 실무에서 결정하고 최종 만원 단위는 회장이 싸인을 하는 방식이 많다고 하네요. 실무직원들이 3.3㎡당 990만원대라고 써서 올리면 회장이 991만~999만원 사이에서 최종 분양가를 확정하는 방식입니다.


“잘 팔려도 걱정, 안 팔려도 걱정”이라는 건설사 팀장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도네요. /kph21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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