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참모진의 면면을 뜯어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기 참모진이 다소 소극적이며 조용한 캐릭터였던 데 비해 2기 참모진에 합류한 대다수는 면면이 강한 캐릭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방향을 정하고 구체 안을 만드는 과정을 청와대 참모들이 주도하고 해당 부처가 따라가는 상황도 자주 연출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 청와대 몸집도 최근 들어 부쩍 커지고 있습니다. 출범 당시 ‘작은 청와대’ 기조에 맞춰 조직을 슬림화했고, 비서실의 경우 인력도 MB (이명박 정부) 말기보다 10% 이상 적은 370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10월말 기준)에는 415명으로 늘었습니다. 2기 참모진이 강한 캐릭터로 구성된 것과 맞물려 작은 청와대가 10개월만에 ‘큰 청와대’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립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요즘 이래저래 바쁩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강조했듯이 새 정부가 내건 4대 국정과제를 하루빨리 자리잡게 하는 데 전력투구하느라 주말이 따로 없습니다. 매일 밤 12시는 기본입니다. 늘 가려져 있지만 정권의 최첨병으로 활약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면면을 시리즈로 탐구해 봅니다. 첫번째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인물탐구①=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지난 14일 국회 운영위에서 열린 청와대 예결산 심의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청와대 주요 참모진이 총 출동한 자리였는데, 질의 도중 민주당 한 의원이 “김기춘 실장이 인사를 다 쥐고 흔든다는 얘기가 있다”며 ‘기춘대원군’이라고 표현하자, 출석한 참모진 사이에 일제히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김 실장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고 ‘쉿!’이라고 합니다. 순간 뒤에 앉아 있던 참모진들의 표정이 굳으며 웃음소리가 뚝 멎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실장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이 장면을 꼽습니다.
확실히 김 실장이 온 뒤로 청와대에서는 “비서실 군기가 확 잡혔다”, “긴장감이 팽팽해졌다”고 말하는 참모들이 많습니다.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실수비)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전임 허태열 실장 때는 수석들의 장황한 보고와 토론으로 회의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허 실장 본인도 행정관료 출신 답게 말을 꺼내면 설명이 긴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김 실장이 오고 나서는 모든 회의가 1시간을 넘기는 법이 없습니다. 김 실장 스스로 업무 지시가 워낙 간단 명료한 스타일인 데다 간혹 수석들의 보고가 길어지면 “요점만 간단히”라는 주문이 나온다고 합니다.
다음은 2기 참모진으로 합류한 모 수석비서관의 경험담입니다. 그는 워낙 해당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데다 달변이어서 실수비 회의 때 보고 내용을 무려 10분간 쫘악~ 펼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곧바로 김 실장의 쳐다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고, 곧이어 “1분내로 정리하세요”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이후 이 수석은 보고 내용을 A4 용지 2장 이내로 줄이고 보고도 간단히 하는 연습을 하느라 꽤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김 실장의 ‘파워’는 역시 인사에서 나옵니다. 비서실장은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부처 장·차관 등 정무직과 산하 공기업 기관장 인사를 챙기는 자리지만 박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의 본인의 고유 권한을 무척 중시하는 까닭에 비서실장이 중간에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임 허 실장도 재임 중에는 온갖 인사 개입설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퇴임 후 지인들과의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털어놨다고 합니다. “언젠가 모 인사가 무슨 자리에 적합한 후보라고 생각해 대통령께 추천한 적이 있는데, 불편한 표정을 지으시더라.” 허 실장은 그 때 이후로는 일절 추천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다릅니다. 전임 허 실장과 달리 적극적으로 추천권을 행사하며 박 대통령도 상당부분 믿고 위임한다고 합니다. 특히 법조인 출신 인사는 대부분 김 실장이 추천한 후보가 낙점된다는 것이 친박(친 박근혜)계 인사들 사이에 정설로 통합니다. 황교안 법무장관, 홍경식 민정수석,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등이 대표적인 김 실장의 추천 작품이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김 실장의 이런 역할 때문에 부처와 공공기관에 대한 김 실장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합니다. 하다 못해 산하기관장 인사에서까지 “김 실장이 누구를 밀었다더라”는 확인불가 소문이 도는 것도 이런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 실장의 파워는 당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납니다. 박 대통령의 원로자문 그룹인 ‘7인회’ 멤버 출신인 까닭에 여당(새누리당) 지도부도 김 실장을 대통령 못지않게 무척 어려워한다고 합니다. 지난 9월초 김 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 초청 만찬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당쪽 참석자 중 한명이 만찬도중 A4 크기의 노란 봉투를 꺼내 김 실장한테 전달했는데, 그 안에는 당에서 만든 인사 청탁 리스트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건네받은 김 실장이 “접수만 하겠다”며 단칼에 거절해 분위기가 싸늘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또 최경환 원내대표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직접 차 트렁크에서 양주를 꺼내와 폭탄주를 제의했으나, 김 실장이 “대통령께서 관저에서 밤 늦게까지 업무를 보고 계시는데 우리가 술마시며 시끄럽게 해서 되겠냐”며 이 또한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와인 몇잔씩을 돌리고 나서 이날 회동을 조용히 끝냈다고 하더군요. 전임 허 실장 때는 여권 내부에서조차 “비서실장이 안보인다”는 식의 비판이 꽤 있었지만, 김 실장이 오고 나서는 이런 류의 목소리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 실장은 ‘원조 친박’ 핵심인사로 분류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 말년에도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 대를 이은 ‘부녀 대통령’을 보좌하는 보기드문 인물입니다. 지난 8월 새 비서실장에 임명됐을 때 여권 주변에서는 “원래 정권 출범 초기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됐어야 하는 분이 뒤늦게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서실장으로는 ‘제격’이라는 평입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로열티도 뛰어나다는 평입니다. 여권 모 중진의원은 “김기춘 실장의 로열티는 ‘고급 로열티’”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충성이 아니라, 어떻게 충성하는 것이 대통령을 욕되게 하지 않고 빛나게 하는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안다는 것이죠. 박 대통령이 이런 김 실장을 언제까지 신뢰하고 맡길 지, 출입기자인 저로서도 매우 궁금한 점입니다. (시리즈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