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반도체 사업 포기 외에도 자구계획을 밝힌 보도자료의 첫 문장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금융, 철강, 전자, 농업·바이오 등 4대 주력분야를 중점적으로 키워나가겠다”는 문구입니다. 원래 동부그룹의 사업부문은 크게 7대 분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철강·금속·화학, 농업·건강·유통, 전자·IT·반도체, 건설·에너지·부동산, 물류·여객·콘텐츠, 보험·증권·은행, 그리고 사회공헌 부문입니다.
이를 4개로 줄인 것은 ‘주요 자구계획’ 내용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매각하기로 했고 동부익스프레스 지분도 팔기로 했습니다. 울산과 김해에 있는 동부팜한농의 유휴부지도 처분할 예정입니다. 금속과 반도체 업종이 사라지고 부동산도 축소되는 셈입니다.
4대 주력 분야의 순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쪽에 있던 철강이 뒤로 가고 금융을 제일 앞으로 내세웠습니다. 동부그룹은 동부화재와 생명, 증권과 저축은행 등 금융과 함께 제조부문이 양대 축입니다. 금융계열사는 상황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동부화재와 생명, 증권 등은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냈습니다.
그러나 제조에서는 동부팜한농과 동부대우전자 정도가 소규모 흑자를 냈습니다. 유동성 위기설의 중심엔 동부건설과 동부제철이 있었습니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룹의 모태인 건설은 이번에 발표한 4대 주력 사업에서 아예 빠졌습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1969년 미륭건설을 창업하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분야를 확장해 그룹을 재계 17위(공사 제외)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김 회장이 고뇌 끝에 내린 결단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어진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유동성 위기 우려를 의식한 것입니다.
동부그룹은 경제개발 초기, 선발기업들보다 30~40년 뒤늦게 출발한 후발기업입니다. 그 불리함을 딛고 사업 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해 창업 30년 만에 국내 10위권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동부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 지하 1층엔 기업의 역사를 소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곳엔 “동부는 끊임없는 기업가 정신과 혁신으로 첨단의 동부 미래의 동부로 나아가고 있다”며 “최고의 글로벌 전문기업, 그 꿈을 향한 동부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주력 사업을 정리한 동부가 기업의 체질을 어떻게 바꿔 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