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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삼국지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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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신 문화부 기자) 삼국지 하면 어느 작가가 생각나십니까? 아마 소설가 이문열 씨일 겁니다. 이문열 씨가 평역한 삼국지(민음사)는 지금까지 1800만부나 팔렸습니다. 역사적인 베스트셀러죠. 그에게서 이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19일 있었던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생포럼 강연에서입니다.

일단 그가 삼국지를 평역하게 된 계기. 쉽게 말해 생업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평역이란 사실 창작이 아니라 번역에 가까운 작업이지요. 이문열 씨도 처음엔 출판사로부터 삼국지 평역을 제의 받고 “내 작품 창작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평역까지 해야 하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마음을 바꾼 이유는 ‘삶의 경영’을 위해서였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선 문학을 한다는 것도 문화상품을 파는 것이고, 다른 생산자처럼 삶을 경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작가들이 흔히 다른 일을 하듯 자신도 이 평역을 ‘부업’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삼국지 때문에 여기저기서 ‘삼국지 경영학’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허구를 바탕으로 경영학을 말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 겁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란 14세기에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입니다.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죠. 사기 같은 다른 역사책과 1000년이 넘는 역사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따와 버무린 작품이니 재미 있을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이문열 씨는 삼국지에 나오는 서서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일례로 들었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왕릉의 이야기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삼국지에서 서서는 돌아오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유비의 곁을 떠나 조조에게로 갑니다. 하지만 그 편지는 서서를 탐낸 조조가 꾸민 거짓편지였고, 어머니는 못난 아들을 뒀다며 목을 매 죽습니다.

사기에 나오는 왕릉도 유방의 휘하에서 재상의 자질이 있다는 칭송을 듣던 인물입니다. 그런 왕릉을 항우가 탐내자 책사 범증은 왕릉이 효자이니 계략을 쓰면 될 거라고 조언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부르는 것으로 속여 왕릉을 데려오게 되고 노모는 “내가 살아 있어서 이렇게 됐다”며 자살하죠.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관우와 함께 굉장히 화려한 인물로 묘사되는 조자룡도 삼국지 정사에는 열 줄 정도로 짤막하게 등장할 뿐입니다.

이문열 씨는 삼국지 경영학을 말하기 적절치 않은 또 다른 이유로 “위·촉·오나라의 국가경영은 이미 환경에 의해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조조는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력을 비교하자면 위나라가 7, 오나라가 2, 촉나라가 1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라가 크고 인재풀이 넓은 위나라에서는 ‘조직경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히 능력에 따라서 사람을 쓰게 되죠. 군주의 개인적 친분보다는 ‘시스템 경영’이 더 적합한 나라가 위였다는 얘깁니다.

반면 국력이 약하고 인재풀이 좁았던 촉의 유비는 친교 중심의 인재경영을 합니다. 관우와 장비, 제갈량, 조자룡 같은 측근을 주로 쓰는 겁니다. 이들이 뛰어난 인재이기도 했지만 워낙 인재풀이 협소했기 때문에 시스템과 조직보다는 군주와의 친분이 중요했다는 설명입니다.

오나라는 특징은 ‘수성’을 잘한다는 점이죠. 이문열 씨는 이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말합니다. 일단 장강(양쯔강)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어 지키기에 좋은 위치입니다. 또 가만히 있으면 고립되고 시들어 망할 수밖에 없는 촉나라가 위를 계속해서 공격하니 그걸 지켜보면 되는 입장이었죠.

이문열 씨는 “경영은 선택의 문제인데 사실 삼국지 세 나라의 경영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이 또한 인간활동의 한 형태임이 분명하고 그들이 환경에 맞게 나름대로 경영해 나갔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 강연을 마무리 했습니다. /hanshin@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