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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청와대측 경호요원의 '액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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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기 정치부 기자) 2013년 11월 18일. 민의의 전당, 대한민국 국회에서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이 끝난 후 국회의원들과 청와대 경호실간 ‘육박전’을 방불케 하는 집단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국회 본청 앞에서 50여분 동안 한 국회의원이 멱살과 뒷덜미를 잡혀 끌려다녔고, 청와대측 경호원 한 명은 입술이 터져 피를 흘렸습니다.

이를 뜯어 말리느랴, 서로 신분을 확인하는 고함을 지르느랴, 잘잘못을 따지느랴, 여기에 기자들 취쟁경쟁까지 가세하면서 본청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몸싸움을 벌인 경호실 담당자는 감쪽같이 현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음날에도 사건 여진은 계속됐습니다. 당사자인 강기정의원과 청와대 경호실측은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벌입니다. 이번 사건을 놓고 강창희 국회의장이 청와대 경호실 측에 공식 사과를 요청키로 했지만, 여야 대치상황에서 이 사건은 쉽게 묻힐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저는 대통령 동선을 취재하기 위해 대기하다 국회의원 다수와 대한민국 최고 경호요원들이 출연한 ‘액션’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목격했습니다. 가감없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니, 잘잘못은 독자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액션#1

오전 10시 30분께.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당시 경호실 요원들이 타고온 버스 3대가 국회 본청 앞 계단에 주차돼 있었는데요. (국회의장단과 양당 대표만 주차할 수 있는 이 곳에 경호버스 3대가 주차한 것을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국회의장과 양당 대표 및 버스 3대가 차벽처럼 쭉 늘어서 있다 보니 통로가 좁아져 사람이 빠져나갈 공간이 부족했던 겁니다. 그런데 하필 민주당은 11시 본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었습니다. 행사에 참석하러 나온 민주당 의원들이 청와대 경호실 버스에 막혀 통행에 불편을 겪자 강 의원이 “왜 길을 비키지 않느냐. 차를 빼라”고 항의했습니다. 강의원은 부인했지만, “이 x끼들아”란 거친 표현도 썼다고 하더군요. 이 때 강 의원은 열려 있던 버스 출입문을 한차례 발로 걷어찹니다. 이 장면을 제가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나중에 출입문을 살펴 보니 강 의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둣발 자국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러자 차 안에 있던 경호실 소속 22경찰경호대 운전담당 현모 순경이 내려와 강 의원의 목덜미와 허리춤을 잡아 끌어냅니다. 근처에 있던 다른 요원 두 명도 강 의원의 팔을 잡아 꺾어 연행하는 듯한 모습을 취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충북 청추 출신 3선 노영민 의원이 함께 있었는데요. 노 의원이 깜짝 놀라 “이 사람은 국회의원이니 손을 놓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현 순경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민주당 의원과 보좌관, 기자들까지 몰려들어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이런 와중에 뒷덜미를 잡힌 강 의원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뒷통수가 해당 직원의 입 부위에 부딪쳤지요. 이 때문에 현 순경의 입술이 찢어져 선혈이 낭자했습니다. 노 의원이 나서서 계속 현 순경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현 순경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죠.

약 10분여 간의 소동 끝에 현 순경은 다시 국회 본청으로 들어갑니다. 이때부터 그에게 직접 해명을 들으려는 기자들과 청와대 경호실 간 숨바꼭질이 시작됩니다. 현 순경을 빼고 두 명의 요원이 계속 그와 함께 있었는데요. 이들 두 명은 현 순경을 취재하려는 기자들을 막아서다가 “여기가 청와대도 아닌데 왜 취재를 방해하느냐”는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지요.

현 순경은 일단 피를 닦고 옷매무새를 다듬기 위해 국회 본청 3층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화장실에서 피를 씻어내고 상처를 확인하더군요. 입술이 찢어지긴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닌 걸로 보였습니다. 실제 몇 분 뒤 도착한 선임자에게 현 순경이 직접 상황 보고를 하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저를 포함해 국회 출입기자 10여명과 민주당 당직자 2명은 화장실 앞에서 현 순경을 비롯한 청와대 경호실 요원 4명과 대치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춘추관장을 했던 김현 민주당 의원도 와서 상황을 살폈습니다. 김 의원은 청와대를 관할하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이기도 합니다. 김 의원이 선임자를 다그쳐 문제가 된 현 순경이 경호실 소속이 맞다는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죠. 방송 카메라도 등장했습니다. 한 종편 기자는 당사자 해명만 한마디 듣고 빠질 테니 협조해 달라고 설득하기도 했죠.

액션#2

대치가 한 20분 정도 계속되자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등장했습니다. 11시17분께입니다. 이 때를 전후로 경호실 요원 10여명으로 불어나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뭔가 ‘액션’이 있겠다 싶었죠. 아니나다를까 곧바로 구출 작전이 시작됐습니다. 외투를 덮어쓰고 얼굴과 상반신을 가린 어떤 사람이 경호실 요원들의 호위를 받아 화장실을 나왔습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국회 건물 밖으로 이동했고 대치하던 기자들은 따라붙어서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죠. “왜 얼굴을 가리셨나”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물론 현 순경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이들은 곧바로 문제가 된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그러나 버스 앞에도 이학영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막아서서 육탄 방어를 하고 있었죠. 민주당 의원및 당직자들은 어차피 현 순경이 ‘독안에 든 쥐’인 만큼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버스를 탄 사람이 현 순경이 아니라는 겁니다. 버스 안에 있던 한 경호실 요원은 현장에 있던 이 의원과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현 순경이 이미 병원으로 후송됐다고 밝혔습니다. 순간 ‘아뿔사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청와대 경호실이 민주당 의원들과 기자들까지 상대로 설마 ‘첩보’를 방불케하는 작전을 쓸 줄은 예상치 못했던 거죠.



그리고 나서 오후에 청와대 측 공식 입장이 나왔습니다. 청와대는 “강 의원이 머리 뒤편으로 현 순경의 안면을 가격하여 입에 상해를 입혔다”며 “현 순경의 입술 내외부가 크게 찢어져 급히 화장실로 이동해 피를 닦아내는 상황에서 민주당 김현 의원이 “너희들 경호실이지!”라고 고성을 지르는 등 소란행위를 유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현 순경은 강북삼성병원으로 응급 후송돼 봉합 치료를 받고 있으며 강 의원의 폭력 행사에 대한 법적 조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당사자인 강 의원은 다음날인 19일 오전 또다시 참고자료를 냈습니다. 그는 이 자료에서 “청와대가 사건이 커질 것으로 판단되자 가해자를 숨기기 위해 사건과 관련 없는 경호원의 얼굴을 덮어씌우고 호송하는 척하는 속임수를 썼다”며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아무런 해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이번 사건의 전말입니다.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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