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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당통의 죽음' 보던 관객 버럭 "담배 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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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형 문화부 기자)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연극 ‘당통의 죽음’ 공연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1막 중간쯤 과격파인 로베스피에르 일당이 온건파인 당통 일당의 라크루아를 몰아부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로베스피에르의 행동대장 격인 생 쥐스트가 담배를 피면서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객석에서 난데없이 “담배 꺼요”라는 한 여성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또렷했습니다. 참 용감한 관객입니다. 담배연기로 불편해진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어 이처럼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그 분 심정도 짐작은 갑니다. 담배연기를 무척 싫어하는 분이겠죠. 어렵사리 찾은 공연장에서까지 혐오하는 담배 연기를 맡아야하는 게 괴롭고 참을 수 없었겠죠.

그렇다고 그분의 돌발 행동을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연극예술에 대한 이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상식 수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무대 위 배우와 공연, 다른 관객들에게 돌아갑니다.

다행히 이후 더 이상의 ‘난입’은 없었습니다. ‘프로’인 배우들은 모른 척 하고 연기하고 극은 그대로 흘러가지만 그 파장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담배 피는 주범인 생 쥐스트 역의 배우는 대사에서 잔 실수를 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딘지 위축된 듯했습니다. 연극은 배우들간 호흡을 맞추는 앙상블이 중요합니다. 미세하게 호흡이 어그러지고 리듬이 깨졌습니다. 배우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연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관객도 마찬가집니다. 무대에 대한 집중력이 흩트러집니다. ‘당통의 죽음’은 대단히 지적이고 세련되고 은유가 많습니다. 연극을 제대로 즐기려면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 무대세트와 조명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공연을 ‘일’로서 평가해야 하는 저로서는 무대 이외의 요인으로 관람의 리듬이 깨지면 무척 괴롭습니다. 무대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다른 생각이 끼어듭니다. 눈은 무대를 향하지만 그 관객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고, 흡연 장면이 많았던 다른 연극들이 떠오르고, 극에서 배우가 담배를 다시 피우면 그 분이 다시 ‘개입’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말이죠.

이 연극에 흡연 장면이 몇번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이보다 담배를 훨씬 많이 태우는 연극들도 많습니다. 또 이 공연장 입구에는 친절하게도 ‘흡연 장면이 나오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안내 문구까지 걸려 있습니다.

결국 이틀 뒤에 다시 같은 연극을 관람해야만 했습니다. 역시 배우들의 연기와 호흡 등 공연의 질이 달랐습니다.

‘현장성’이 특징인 공연은 매번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담배 꺼요”로 인한 차이가 명확해 보였습니다. 6일 공연을 본 관객들은 유감스럽겠지만 공연의 균질성을 따지긴 어렵습니다. 배우들도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배우와 무대 못지 않게 관객도 공연을 좌우합니다.

얼마전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바냐 아저씨’를 봤을 때의 불쾌한 경험도 떠오릅니다. 극중 갈등의 폭풍이 지나가고 정적이 흐르며 배우도 관객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시간에 객석 여기저기서 휴대폰 진동과 벨소리가 연이어 울렸습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연인 커플은 시도때도 없이 귓속말을 나누고 키득거렸습니다. 시적이고 문학성이 높은 연극이었는데 흐름이 단번에 깨졌습니다.

올초 손숙 배우와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손 배우가 들려준 말씀 한 대목이 요즘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좋은 연극은 좋은 관객이 만듭니다.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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