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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아저씨' 연극연출가 이성열씨 "배우가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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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형 문화부 기자) 이성열 연출가는 국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극연출가 중 한 명입니다. 지난해 ‘과부들’로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고, 올해 연출한 ‘채권자들’,‘죽음의집2’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7년 김상열연극상 수상 당시 “인간사회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지만 결코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고, 또한 심심치 않게 재기발랄한 발상 전환으로 무대를 뒤집어 놓지만 결코 경박하지 않다”는 심사평을 들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대변해 줍니다. 그가 대표로 있으면서 주로 작품활동을 함께 한 극단 ‘백수광부’는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극단으로 손꼽힙니다.

그가 이번에는 명동예술극장과 손잡고 오는 26일부터 내달 24일까지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공연합니다. 이 작품은 체호프의 4대 장막극 중 하나로 국내서도 자주 무대에 오릅니다. 이번 ‘바냐 아저씨’ 공연이 연극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국내 최고의 연극무대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성열 연출로 올려진다는 점입니다. 17일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몇몇 기자들과 함께 이 연출가와 만나 이번 공연과 체호프에 대해 한시간 가량 얘기를 나눴습니다. 주요 내용을 문답식으로 소개합니다.

-이번 공연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요.

“이 작품을 처음 하려고 마음 먹은 게 10여 년 전입니다. 1997년 체호프의 4대 장막극을 해체해서 재구성한 일종의 실용극인 ‘굿모닝 체홉’을 하면서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후 (체호프의 다른 장막극인) ‘세자매’, ‘벚꽃동산’ 은 연출했습니다. ‘바냐아저씨’는 연출 중심이 아닌 배우 중심의 작품인데 극단 ‘백수광부’ 배우들의 연배가 주요 배역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여서 하지 못했는데 다행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무대화할지 궁금합니다.

”원작을 그대로 따릅니다.원작이 줄 수 있는 깊이, 가슴 아픔, 떨림, 감동 등을 이 시대 관객들과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요즘 연극들이 자극은 있지만 감동은 없다는 지적이 많은데 체호프의 작품이야말로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배역들의 괴로움과 몸부림,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해체와 그 과정에서 깨달아가는 삶의 고단함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랍니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정면 승부하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배우 분들이 모두 출중해서 좋은 무대가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바냐 역은 이상직, 세레브랴코프 역은 한명구, 아스트로프 역은 박윤희, 엘레나 역은 정재은, 소냐 역은 이지하가 출연합니다. 바냐 어머니인 마리야 역에는 연극계 산증인인 원로배우 백성희 선생님이 특별 출연합니다. 연출가 표현대로 출중한 배우들이죠.)

-연출 중심이 아니라 배우 중심의 작품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작품은 연출이 끼어들 곳이 없어요. 원작의 시적인 함축성이나 음악적인 리듬을 잘 살려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출이 그림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배우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료를 보니 체호프가 그리고 있는 일상은 ‘새로운 일상’이란 표현을 쓰셨는데요.

“체호프가 아닌 다른 일반적 작품들에서 일상을 그린다하면 극적인 요소를 뽑아서 서사를 구상하죠. 체호프의 극은 극적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얼핏 보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합니다. 희랍극에서 실제 사건은 무대가 아니라 무대 밖에서 사건이 벌어지듯, 체호프의 작품에서도 실제 일어난 사건은 무대에서 보여 지지 않는 인물간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진 않아요. 체호프는 의사 출신답게 냉혹하고 냉정하게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면서도 서머싯 몸이나 모파상과는 다르게 따뜻한 면이 있어요. 더럽고 가치 없어 보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품어내고 견뎌낼 때 그 작가가 고전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냐아저씨’를 오랫동안 품고 계셨던 이유는.

“체호프 작품 중 ‘바냐아저씨’ 에서 가장 서민적이고 평범하고 실패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냐와 소냐는 직접 농사를 짓고, 아스트로프 역시 농촌에 내려와서 의료 활동을 하지만 결국 실패한 지식인입니다. 그러한 평범하고 실패한 인생의 모습들이 가장 와 닿았었던 것 같아요. 작품 형식으로 보면 <벚꽃동산>이 훨씬 화려하고 재미있는데 바냐의 인물들에 훨씬 공감이 되었고, 관객들도 그런 약자들에게 공감을 하길 기대합니다.”

-주인공 바냐의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요.

“쉽게 얘기해서 50대 쯤 되어서 ‘인생 헛살았구나’ 느끼는 사람이 바냐입니다. 대사 중에 ‘과거는 없다. 현재는 무의미하고 공허하다.’라는 부분이 있죠.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사회에서는 회사나 어느 조직에서나 나이 50이 다 되었을 때, 그동안 무엇을 위해서 일해 왔는지, 과거가 사라지는, 현재의 자신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미래의 희망도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이가 바냐라고 생각합니다.

/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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