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국제부 기자) 커피 원두 가격이 폭락 위기에 놓였다. 누런 천연 삼베로 짠 자루에 담겨야만 국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었던 수백년의 전통이 깨지면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커피 원두가 사고 팔리는 국제상품거래소(ICE)는 지난주 거래되는 커피 원두의 포장 규격을 대폭 완화했다. 그동안 금지했던 합성섬유 자루인 ‘수퍼색’에 담긴 커피 원두도 거래 적격 상품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새 규격은 2015년부터 도입된다. ‘수퍼백’에는 12만5000잔 분량의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커피 원두가 담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같은 움직임이 상품 거래 시장의 ‘큰손’들과 커피를 대량으로 사고파는 대기업들의 편의를 봐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커피 원두의 포장 규격은 이미 2년간 60% 폭락한 커피값을 더 떨어뜨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천연 삼베와 달리 수퍼색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데다 한번에 담을 수 있는 커피의 양도 많아 공급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시카고 프라이스퓨처그룹의 잭 스코빌은 “재고량이 크게 늘어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원두값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라비카 원두의 올해 재고량은 최대 생산지인 브라질의 수확량이 늘면서 3년반만에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아라비카 원두의 과잉 공급 탓에 지난 10일 ICE에서 아라비카 원두 선물은 파운드당 1.1525달러에 거래됐다. 2009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ICE의 규격 완화에 비판 여론도 거세다. 수백년을 이어온 업계의 표준 규격이 깨지면서 원산지를 둔갑시키는 등 정보와 품질 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커피 바이어로 일하는 셰릴 킹언은 “그동안 포장을 보고 컬럼비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등 원산지 구분이 가능했지만 수퍼색을 도입하면 뭘 사는 지 정확히 모르고 사게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규정이 변한다 해도 여전히 고품질의 커피 원두는 소형 자루에 담겨 유통될 것이라는 것이 의견도 나온다.
화산 활동 후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자라 품질이 뛰어난 코스타리카 품종은 총생산량의 90%가 소형 자루에 담겨 판매된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새 규정이 도입되더라도 품질이 보장되는 소형 포장 커피만 취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