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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의 불편한 진실…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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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의 불편한 진실…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어제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간략하게 설명드렸습니다. 오늘은 ‘기회의 균등’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기회의 균등은 인간의 차이, 다시 말해 생래적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가치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납니다. 힘이 센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뇌가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서도 어학에 소질이 있는 이와 수학을 잘하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거꾸로 중증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바람에 공부도, 운동도 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바둥거려도 결국 사람은 유전자의 명령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이나 환경에서 태어나느냐에 못지 않게 어떤 유전자를 받아 태어나느냐가 인생 경로를 결정 짓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사실, 누구나 노력한다고 손흥민이나 조성진처럼 뛰어난 운동선수나 피아니스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학교나 직장, 창의적 무대에서 오랜 기간 경쟁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점을 자주 느꼈을 겁니다. 정의나 공정의 가치는 이런 격차를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원시적 초자연적 상태의 정의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 주전투수를 제비뽑기로 무작위 추첨하면 누가 그 경기를 보겠습니까. 자유로운 사회에서 능력과 재능, 그에 따른 보상의 격차는 불가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의를 구현해야 할까요.

바로 기회의 균등(평등)입니다. 한 사회가 정의로우냐, 아니냐를 가르는 최우선적 잣대입니다. 비록 모자라는 능력일지라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취업이나 창업에 실패해 전 재산을 날렸더라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공동체의 희소 자원을 구성원들이 합의한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나누는 것, 힘 있는 사람들이 힘 없는 사람들의 소중한 기회를 가로채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로 통제하는 것 등이 그 덕목들입니다.

국내에서 그동안 ‘기회의 균등’이 어느 정도 이뤄져 왔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가 있습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입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와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패널 조사를 활용해 1990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의 기회불평등 정도를 지수로 산출했습니다.
복잡한 산식을 거쳐 고안된 이 지수는 숫자가 높을수록 ‘기회의 불균등’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90년 19.79였던 지수는 2016년 34.82까지 두배 가까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제동의 ‘망치론’은 정의가 아니다

좀 풀어서 설명드리면 하위 20% 계층의 젊은이가 나중에 성장해 상위 20%로 진입할 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이 반토막났다는 겁니다. 굉장히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계층이동(모빌리티) 가능성이 이렇게 확연히 줄어들면 사회의 안정성은 급속도로 흔들립니다. 인간은 시기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본인의 경쟁력을 점검하고 자존감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본인 능력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딴 마음을 먹습니다. 능력과 성과 차이를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입니다. 김제동 같은 얼치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판을 깝니다. 판사와 목수의 망치 값이 왜 달라야 하느냐고 말이죠.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의 차이를 굳이 알아야할 이유가 없는 대중들은 금세 미혹되고 맙니다.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이들의 틈을 기민하게 파고 듭니다. 선동과 환호가 엇갈리는 그늘에 포퓰리즘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납니다.

하지만 ‘결과의 평등’은 궁극적으로 구성원들에게 ‘기회 균등’이라는 최소한의 보장도 못하게 됩니다. 기회 균등을 위해 남겨둬야 할 국가 재원을 결과의 평등을 실현하는데 모조리 써버리기 때문입니다. 걸핏하면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는 남미 국가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가 자산과 국민 노동력을 헐값에 팔아먹고 버팁니다. 양극화는 말도 못할 정도로 심합니다. 계층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A1,4,5면에 창간 56주년 두 번째 기획을 실었습니다. ‘기회 균등’의 첫 관문인 교육 문제를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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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이라는 말이 아깝다

정부가 오랫동안 뜸들여 오던 재정준칙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비율을 -3% 이내로 각각 관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적용시점을 2025년 이후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대규모 재해 등이 발생하면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는 예외규정도 뒀습니다. 게다가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책임을 지도록 한 것도 아닙니다.

마음대로 돈을 못쓰는 상황이 올까봐 노심초사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는 2022년까지입니다. 기재부가 발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24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8.6%로 예상됩니다. 그때까지 마음 놓고 재정을 동원할 수 있도록 ‘2025년 60%’ 기준을 끼워 맞춘 흔적이 엿보입니다. 있으나 마나한 맹탕 준칙입니다. 홍남기 부총리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A1,3면에 정인설 구은서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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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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