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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증에 빠진 경제관료들…높은 자부심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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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증에 빠진 경제관료들…높은 자부심은 어디로 갔나

얼마 전, 기획재정부가 5년짜리 중기재정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말 국가부채를 1070조원으로 제시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2021년말 국가부채 전망치보다 125조원이나 늘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숫자도 컸지만 방향과 속도 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올해만 98조원이 늘어나는 국가부채가 내년에 코로나발 팽창예산 탓에 105조원 이상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재부는 그 이듬해 늘어나는 국가부채 규모를 125조원으로 더 키워놓은 것입니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이렇게 통이 크면 안됩니다.

역대 정부 가운데 재정을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정부는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증가하게될 나랏빚이 410조원인데요.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의 부채증가 합산액보다 60조원이나 많은 것입니다. ‘재정 파수꾼’으로 불리는 기재부 공무원들은 이런 양상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전직 관료들은 대부분 혀를 끌끌 찹니다. 아무리 정권의 위세가 대단하더라도 경제관료로서의 전문성과 자부심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현직 공무원들은 일단 말을 아낍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재정확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쩐지 남의 얘기를 대신 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대체로 체념하고 있는 듯한 표정입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는 식입니다. 사실 정색을 하고 이 사람들 탓을 할 수도 없습니다. 거창한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할 처지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무원들은 장관의 명을 이행해야 하는 것이고, 장관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주문을 소화해야 하는 것이죠.

유난히 고집스러운 부동산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시장적이고 징벌적인 규제와 세제를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공무원들이지만, 정책의 뼈대를 설계하고 주문한 이들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겠죠. 경제학자들이 악법이라고 입을 모으는 임대료 규제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등과 같은 코드형 정책들도 공무원들이 통계조작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떠받든 정책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벌어질 일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정치권의 위세는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관료들의 전문성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홍남기 부총리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비판에 동조했다가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것은 관료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감히 대선주자에게…”로 시작하는 모 의원의 질타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재명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문 정부때 늘어난 국가부채는 조족지혈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론 홍 부총리를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처음에는 정책의 합리성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문받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습니다. 반시장적이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부동산 세제가 대표적입니다. 부동산 감독기구 명칭을 ’부동산 거래분석원‘으로 바꾼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홍 부총리가 직접 작명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이름이라고 결정을 해준 것은 맞을 겁니다. 관료적 경험과 기술을 이런 대목에 써먹고 있습니다.

202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역대 최악의 포퓰리즘으로 치닫을 우리 정치권도 걱정입니다. 이재명 지사 같은 사람과 지지율 1위를 다투는 상황에서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선명성 경쟁을 펼쳐야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실제 어느 재래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통산업 규제방안을 일찌감치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출범과 동시에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주요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경제정책의 ‘좌클릭’ 압력은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경제관료들이 이런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저의 솔직한 마음은, 결국 견뎌내지 못하더라도 정책 공부는 제대로 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철마다 부서 이동하고 승진에 신경 써야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공복(公僕)의 기본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기본소득이든, 음의 소득세든, 재난지원금이든, 제대로 공부하고 탐색해서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자료들을 많이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 A1,3면에 성수영 노경목 강진규 기자가 썼습니다. 한달여 동안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고 제법 공들여 취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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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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