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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감독·배우로 변신한 경찰…"시민에게 희망주는 존재 되고파"

“컷! 다시 갈게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성내2동 안말어린이공원에서는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일반 영화 촬영과 다른 것은 감독부터 배우까지 모두 현직 경찰관들이라는 점이다. 정소라 서울 강동경찰서 성내지구대 순경(29)이 메가폰을 잡고 정 순경의 남편 홍정호 순경(성남 수정경찰서 복정파출소·30)과 그의 동기 김우람 순경(성남 수정경찰서·28)이 연기자로 나섰다.

영화 촬영은 모두 처음이었다. 촬영은 2주 전 서울지방경찰청의 임신부 경찰복 화보 촬영 때 정 순경과 인연을 맺은 김현수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경장(40)이 맡았다. 정 순경은 “가족처럼 친근한 경찰의 모습을 영상에 담고 싶어 영화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한국경제신문 공동 주최로 지난달 21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경찰 29초 영화제’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관심이 뜨겁다. 바쁜 업무 시간을 쪼개 시나리오를 쓰고 카메라를 들었다.

29초 영화제 관계자는 “벌써 수준 높은 작품이 꽤 많이 출품됐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사건 현장에 카메라 등 영상장비를 갖추고 출동하면서 경찰들이 영상 촬영에 익숙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무 경험이 시나리오로

문원정 부산 북부경찰서 경위(32)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동료 경찰이 경험한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했다. 한 할머니의 112신고를 받고 출동해 보니 할머니는 전기 설비 문제로 불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에 혼자 있었다.

전기 설비를 고치고 할머니의 손에 쥔 종이를 살펴보니, 자녀들의 휴대폰 번호와 함께 파출소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해당 경찰관은 친자식 같은 책임감을 새삼 느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작성한 문 경위는 연출과 주연까지 맡아 파출소 직원을 연기했다. 문 경위의 외할머니 배원통 씨(85)가 혼자 사는 할머니로 특별 출연했고,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김원경 경장(30)은 촬영 장소를 섭외하며 제작을 도왔다. 촬영과 편집은 홍익대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장동혁 일경(20)이 맡았다.

문 경위는 “29초 분량의 짧은 영상이지만 촬영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다”며 “일선 경찰서나 파출소에 있는 경찰들이 도움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밤잠 줄여가며 영화 작업한 의경들

의경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 202경비단 603전경대 일경(21)과 동기들은 집회 현장에 출동한 경험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했다.

배우로 참여한 천영재 일경(20)은 “집회 현장에서 경찰은 자주 ‘진압의 벽’과 같은 부정적 존재로 인식된다”며 “하지만 결국에는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벽이 되려 한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약 2주 전부터 영화 제작을 준비했다. 경비 근무 등 바쁜 일과로 작업 시간이 부족해 점호가 끝난 밤 9시 이후에 모여 제작 회의를 했다. 소품과 촬영장비 준비는 간부들이 도왔다. 연극·영화를 전공한 팀원들의 역할이 컸다. 감독을 맡은 김 일경은 중앙대에서, 천 일경은 단국대에서 연극영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이들은 케첩과 빨간색 프린터 잉크를 혼합해 그럴듯한 핏자국을 연출하기도 했다.

‘경찰은 나에게 화가다’는 주제로 영화를 제작한 김효석 서울 동대문경찰서 경장도 같은 서에서 근무하는 서문석 수경 등 의경들의 도움을 받았다.

영화는 아이들이 그리는 세상을 경찰이 밝게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김 경장은 “영상을 전공한 의경들이 카메라로 촬영하고 편집하는 등 큰 역할을 했다”며 “주말에는 외출도 나가야 할 텐데 기꺼이 작업을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했다.

‘경찰 29초 영화제’ 접수 마감은 내일(11일) 밤 12시다. ‘29초 영상편지’ ‘경찰 인증샷’ ‘29초 경찰청사람들’ 등 3개 이벤트는 오는 16일까지 진행한다. 출품할 작품과 동영상 편지 등은 경찰 29초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www.29sfilm.com)에 올리면 된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전 10시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경찰, 일반인, 청소년 등 3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며 총상금은 2000만원이다.

영화감독과 배우, 대학교수, CF 감독, 경찰청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세 차례에 걸쳐 심사해 당선작을 발표한다. 네티즌도 공모기간에 홈페이지를 방문해 응모작들을 보며 ‘추천’을 누르거나 댓글을 달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다. (02)360-4332~4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