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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29초 영화제

영화 촬영에 흔히 쓰이는 35㎜카메라 한 대 값은 수억원대다. 필요한 렌즈세트를 갖추는 데만도 1억원 넘게 드는 게 보통이다. 희소성 높은 장비이다 보니 빌려 쓰는 비용만도 하루 수백만원씩 들어간다. 이들 고가의 카메라는 촬영 현장에서도 촬영부에 속한 인원이 아니면 만져보기도 쉽지 않다. 영화에 관심이 높아도 선뜻 촬영에 나서기 어려웠던 이유다.

하지만 동영상 기능이 딸린 휴대폰을 비롯 캠코더,디지털 카메라 등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요즘 나오는 휴대폰은 웬만한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는 거뜬히 찍을 수 있는 기능을 갖췄다. DSLR 카메라의 일부 기종은 장편영화를 촬영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윤성호 감독의 '도약선생',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 등이 그 사례다.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은 올해 초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단편 상업영화 '파란만장'을 발표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선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공모하는 '폰필름페스티벌'이 별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현재 작품을 접수중인 한국경제신문 주최 '29초 영화제(29sfilm.com)'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참가 자격이나 작품 주제,장르에 제한이 없다. 어떤 기기나 수단을 동원하든 전하려는 메시지를 29초 안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서비스가 지원되는 만큼 해외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 영화가 출품되는 대로 웹과 앱에 공개해 누구나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철저하게 개방형 영화제인 셈이다.

출품작은 벌써 1000여편에 이른다. 영화전공자들이 전문 장비를 사용해 만든 작품도 있지만 학생 직장인 주부 등이 휴대폰 캠코더 등으로 찍어 보낸 작품이 더 많다. 초등학생 참가자까지 있다. 그렇다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활주변의 잔잔한 영상에서부터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다양한 소재를 재치있고 강렬하게 풀어낸 솜씨들이 만만치 않다.

보편화된 기기로 영화를 찍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는 분석도 있다. 소재나 구성에 제약을 받지 않는 만큼 기존 영화문법과는 전혀 다른 형식과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젠 영화의 수용자에 머물렀던 '일반인들'이 생산자의 역할도 겸하는 시대다. '29초 영화제'를 통해 영화 저변이 확대되고 영상표현의 새로운 영역이 개척됐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