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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시장 입법·방만 재정·부동산 규제 … “공무원은 시키는 대로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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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적 전문성은 어디로
유례없는 징벌적 조세정책에도 … 기재부 반대 목소리 없어
서슬 퍼런 당청에 밀려 관료출신 장관들 이견도 못 내놔
野 국민의힘까지 ‘좌클릭’ … 정치 포퓰리즘 더 기승부릴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경제정책을 전문 관료들에게 맡겼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386 청와대 실세들과 번번이 충돌하면서도 신용카드 대란 직후 경제살리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토대 마련 등을 관철시켰다. 배경에는 “정치적으로 손해지만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며 경제관료에 힘을 실어줬던 노 전 대통령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는 문재인 정부는 반대로 시작부터 경제관료를 적대시했다. “관료를 쓰면 개혁이 물 건너간다”(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는 노무현 정부 실세들의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2017년 김진표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취임 직후 “보수 정부 10년간 정부 관료들이 흘려들었던 우리의 국정 철학을 뼈저리게 느끼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정기획위는 현 정부 국정 운영 방향의 밑그림을 그린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책 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제관료에게 유독 가혹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혁신성장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지만 소득주도성장을 밀어붙이는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급기야 2018년 11월 국회에서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가 있다”고 밝힌 뒤 나흘 만에 경질됐다. 여야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은성수 금융위원장 등 관료 출신 장관들이 이견을 내지 않는 것도 이런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러는 사이 정치권의 정책 주도권은 커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탈원전과 복지지출 확대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계승할 것을 밝히고 있다. 야당 대표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마저 현 정부 정책기조와 비슷한 기본소득과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럼에도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반기를 들지 않는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부작용을 초래할 것을 알면서도 출세를 위해, 때로는 반대해 봐야 바뀔 게 없다는 체념과 무기력 속에 ‘하도급 기술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재부 세제실이 대표적 사례다. 세제실은 작은 세율 변화 하나도 각 경제주체의 행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원칙과 경제 영향을 중시한다. 그런 공무원들이 요즘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원칙 없는 세금 정책을 뒷받침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청와대가 밀어붙여 세법개정안에 반영된 ‘부자 증세’가 그랬다. 기재부는 연 10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45%로 올리면서 “세금을 더 내게 되는 사람은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의 0.0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소득자 수가 적으니 더 걷어도 별 상관없다는 건 조세 원칙이 아니라 정치”라고 했다. 다른 경제부처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요즘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정부 규제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당초 공정위는 1~2년 정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규제 여부를 신중하게 따져볼 생각이었다. 섣불리 규제를 만들었다가는 산업 경쟁력이 약화돼 외국 플랫폼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여당이 “빨리 규제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연말을 목표로 정부안을 준비 중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정부에서는 정치권이 관료들의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들어 자율성이 약화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포퓰리즘으로 폭주하는 입법부를 막기 위해서는 관료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영/노경목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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