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전모 부장(51)은 은퇴 후 인생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3년 전 마포구에 30평대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도 모자라 퇴직연금까지 중도 인출해 아파트 구입 자금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전 부장은 “월급 실수령액이 1000만원 안팎인데 대출이자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월급통장에 남는 게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5%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2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 샐러리맨의 노후 준비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은퇴 후 소득 비율인 소득대체율은 50.8%에 불과하다. 미국은 이 비율이 81.3%에 달한다. 은퇴 전 평균 1억원의 연봉을 받았다면 은퇴 후에는 매년 800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S&P500과 나스닥시장 등 주식시장 활황에 힘입어 ‘연금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수십만 명이다.
영국에서는 집값이 크게 오르는 와중에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주택 구입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퇴직연금 등으로 확보한 노후 자금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노인 인구가 늘어서다.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은 다양한 인센티브 등을 통해 개인의 노후 대비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하는 등 노후 대비를 위한 정책 지원에 나섰지만 국민의 인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에셋증권이 40~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3명은 한 해 동안 퇴직연금 수익률을 한 차례도 조회하지 않았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장은 “고령화 시대 국민의 노후자금 대비를 지원하기 위해 복잡한 세금 제도를 정비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최만수/런던=양병훈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