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한 이른바 ‘노사정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민주노총이 빠져 막판에 김이 빠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협약 내용도 대부분 선언적인 것입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입니다. 이 정도의 합의문을 내려고 지난 40여일동안 언론들이 그렇게 많은 기사를 쓰고 사진 취재를 한 것인지 허탈할 정도입니다. 협약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도 문재인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썩 밝지 않았습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 2018년 노사정위원회를 개편한 조직으로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입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 출범 초기에 잠깐 들어왔다가 나가버린 민주노총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개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타협’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방식의 논의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습니다. 이번 건에 한해 ‘원포인트 대화’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 강경파들은 막판에 이것 마저 걷어차 버렸죠.
민주노총은 오래전부터 왜 이렇게 노사정 또는 경사노위 참여를 꺼리는 것일까요. 어쩌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한국 노사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참여에 따른 이득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총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갖고 있는 이익집단입니다.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얼마든지 관철시킬 수 있는 마당에 여러 경제주체들의 상황을 배려해야하고 경우에 따라 각종 의무를 져야하는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기가 싫은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좌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민주노총의 이념적 지향성 때문입니다.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고 탄압한다는 세계관 아래서는 ‘자본가들’과의 타협 내지는 합의가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은 노사정이든, 경사노위든 어딘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일 겁니다. 민주노총의 과격한 정치 구호는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국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사노위에 발을 담그면 이런 행동에 제약이 따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겁니다.
20년동안 아무런 합의도 못했다
새삼스럽게 민주노총을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한 것이구요, 전는 이번에 경사노위 같은 노사정 대화기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냐에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우선 그동안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 경로로 알아봤는데, 대화와 논의는 있었을지 몰라도 제도적 개선이나 산업현장의 관행을 바꿀 수 있는 합의는 하나도 이뤄진 게 없습니다. 지난 20여년을 통틀어도 그렇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극단적으로 비판하면, 국민 세금으로 사무실 얻어서 회의하고 사진 찍은 것이 활동의 전부입니다.
경사노위에서 뭔가 대단한 합의를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노사정 합의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습니다. 이번에 민주노총이 참여해 ‘사회적 대타협’이 이뤄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적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적 합의는 어디까지나 국회의 권한입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대표들의 자격도 문제입니다. 이들이 국민들을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나아가 개별적 대표성도 의문입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이 전체 근로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한상의와 경총이 모든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대표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2% 미만에 불과합니다. 통상 대기업 총수들이나 정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경제단체장들 역시 경제계 전체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격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마치 대표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활동해온 것 아닙니까.
경사노위의 미약한 대표성은 회의 참여 거부는 물론 사후적으로 합의내용을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노동계의 참여 구조는 특히 무책임합니다. 중간 합의를 하더라도 대의원이나 조합원들이 반대하면 지도부 자체가 물러나버립니다. 상대방 입장에선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됩니다.
28일 노사정 협약식 관련 기사를 크게 쓰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긴 해설을 붙였습니다. 이제 경사노위 같은 조직은 없애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표성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아무런 권한과 책임도 없이 운영하는 조직에 국민 세금을 내야하는 겁니까. 어쩌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라는 조직의 허구성을 일찌감치 꿰뚫어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구요? 이런 조직 없어도 산업현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난 20년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A8면에 김형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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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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