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 사자성어가 조선시대부터 국내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점이다. 임진왜란 당시 한성을 버리고 중국 망명을 위해 의주까지 몽진을 떠났던 선조에게 지원군을 보내준 명나라는 망할 뻔한 나라를 다시 살려준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대상이었다. 주자학의 사고에 젖어있던 조선의 지도층 입장에선 ‘중화(中華)의 원조’인 명 나라가 국난에 처한 ‘소중화의 조선‘을 다시 살려주는 은혜까지 베풀었으니, 어찌 그 은혜를 다 갚으랴.
이런 마음을 바위에 새겨 자자손손 알리겠다는 조선 ‘골수’ 성리학자들의 글귀가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과 경기도 가평 조종암에 전해진다. 선조의 필체를 옮겨서 새긴 ‘만절필동’이다. 명을 섬기는 충신의 절개를 결코 꺽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후 만절필동은 ’숭명반청’과 조선의 명에 대한 사대를 의미하는 대표적 사자성어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는 당연한 명분이었겠지만 후대의 눈에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문 의장은 이 글귀의 휘호를 미국 하원의 수장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문 의장이 평소 서예를 즐긴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지난해 국회의장 선거때는 의원들의 성품과 정치적 야심을 고려한 맞춤형 사자성어 휘호를 전하며 표심을 공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방미는 국회 차원의 외교를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미국까지 가서 논란 많은 글귀를 한문으로 써서 선물하는 모습은 ‘한글의 나라’ 국회 수장으로 썩 바람직한 처신은 아닌 듯 싶다. (끝)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