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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대통령의 '메모'습관과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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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 ‘암기능력‘에 대한 상대후보의 공격을 받곤 했다. ‘3D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발음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 ‘A4 용지를 챙겨가는’ 문 대통령의 자세에 다소 장황하고 이례적인 방어논평을 냈다. 각국 정상과의 짧은 만남에서조차 A4용지를 들고 대본 읽는 듯 한다며 문제삼은 한 매체의 칼럼을 겨냥한 것이다.

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제가 길지 않지만 넉 달여간 많은 정상회담과 그에 준하는 고위급 인사들과의 회담에 들어갔는데 거의 모든 정상이 메모지를 들고 와서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며 “문 대통령의 경우가 절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이어 “메모지를 들고 와 이야기하는 것은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 내가 이만큼 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성의 표시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은 작심한 듯 ‘지도자의 권위, 자질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칼럼속 표현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정상 간 한 마디 한 마디는 범인(凡人)의 말과는 달리 국가의 정책과 노선을 결정짓는 말”이라며 “제가 본 좁은 범위에서 모든 정상이 그 말에 신중함을 더하기 위해 노트를 들고 와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정상 간 짧은 모두발언까지 외우지 못하거나 소화해 발언하지 못하는 건 문제’란 지적에 대해선 ”문 대통령이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다는 점을 상기시켜드린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기자는 문 대통령의 2013년말 대선출마 선언때부터 당대표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될때까지 수많은 공식·비공식적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 간의 경험을 토대로 문 대통령이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안면인식’능력엔 다소 의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 사회, 외교·안보 등 모든 현안에 대한 통찰력과 역사 예술분야를 아우른 심미안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김 대변인 말대로 ‘사법연수원 차석’의 학습능력에다 대선 재수를 거치면서 광범위한 싱크탱크 조직과 토론하며 단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대표나 대선후보시절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면 어김없이 사전질문을 요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사전질문과 준비답변의 맥빠진 인터뷰가 될 것으로 지레 짐작하기도 했고, 문 대통령의 임기응변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기우였다. 기자들의 인터뷰는 통상 사전질문 범위를 벗어나기 십상이다. 진짜 신문 기사의 ‘야마(핵심내용을 일컫는 속어)’는 즉석 질문이나 혹시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까 머릿속에 품고 간 질문으로 채워진다. 기자의 경험상 문 대통령이 말문이 막히거나 엉뚱한 답변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대통령 취임후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두번의 집단 인터뷰를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는 ‘짜고치는 인터뷰’형식을 탈피하기 위해 자유 토론방식을 제안했디. 공식적으로 사전질문이나 질문자도 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은 대통령 발언의 엄중함을 감안해 예상 사전질문을 뽑고, 모범답안도 준비했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 앞서 사전이 이를 숙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문 대통령이 기자들과 마주앉을때면 참모진이 준비한 모범답안으로 추청되는 두툼한 서류철을 책상위에 올려놨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1시간여 인터뷰 시간 내내 서류철을 들추는 것을 본 적은 없다. (끝)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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