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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중견기업계 끊이지 않는 채용논란, 답답한 취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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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정 중소기업부 기자) 중견기업계에서 채용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기업의 정규직 자리에 목마른 취업준비생들이 나중에야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알고 울분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기업은 국내 1위 종합가구업체 한샘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신입·경력 수시채용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사람인과 잡코리아 등 채용 사이트에선 ‘정규직 채용’으로 분류·기재됐습니다. 이를 보고 지원한 취업준비생 중 1차 면접을 통과한 30여명이 최종 면접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야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통보받은 것입니다. 해당 직군은 한샘 직영매장에서 일할 마케터 및 매장 프로모션 디자이너, 홈쇼핑 작가, 웹디자이너 등이었습니다.

한샘측은 “담당자가 실수로 ‘계약직 채용’이란 사실을 표기하지 않았다”며 “1차 면접이 진행된 이후 이를 인지해 면접 합격자들에게 사과 전화를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한샘은 부랴부랴 이번 합격자들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바꿔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퍼시스그룹의 계열사인 일룸도 작년 11월 ‘대리점 정규직 영업직 직원’(일룸 리빙디자이너)을 채용한다고 공고한 뒤, 본사 계약직으로 바꿔 논란이 일었습니다. 서류·면접 전형을 통과한 예비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입사 교육을 시키던 중 바꾼겁니다. 정규직으로 알고 있던 예비합격자들 중 상당수가 회사측 통보를 받고 그만 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룸측은 “원래 일룸 대리점에 정규직 영업직으로 배치할 계획이었지만 해당 대리점 중 일부가 본사 관리 매장으로 바뀌면서 본사 계약직으로 변경됐다”며 “오리엔테이션 당시 채용 내용에 변경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채용업계 관계자들은 회사마다 사정이 달라 일반화할 순 없지만 이런 일이 기업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일단 뽑아놓고 스펙(입사자 조건)을 보고 결정하거나, 영업직의 실무능력(실적)을 확인하고 정식 채용하겠다는 것이지요. 신입사원 및 수습(인턴) 과정에서 일정 금액의 매출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채용이 취소되는 사례도 그래서 빈번합니다.

대기업 ‘공채’와 같이 명확한 방식이 아니라 수시채용의 경우, 회사측은 모든 고용 형태를 염두에 두고 정규직·계약직 여부를 제대로 공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카페 프랜차이즈인 ‘백미당’을 운영하는 남양유업은 지난해 이런 채용공고를 냈습니다. ‘J(인력공급업체) 소속 파견직 근무 뒤 백미당 소속 정규직 전환, 장기근속자에 한해서 평가 후 정규직 전환, 경력자의 경우 정규직채용 가능.’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도대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용공고입니다.

업계에선 정규직으로 공고한 뒤 채용 절차가 끝난 마지막 단계에 ‘널 뽑겠지만 정규직 말고 계약직은 어때’라거나 ‘일단 계약직으로 일하고 성과가 좋으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고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나중에 법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도록 모집 공고 시 애매하게 고용 형태를 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규직 일자리를 원하는 취업준비생들로선 답답한 노릇입니다. 입사준비에 쏟아부은 시간도 아깝지만 막상 채용되더라도 일해야 할 지 여부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계약직으로 일해야 하는 건지, 아님 다른 곳에 지원해야 하는 것인지….

특히 이런 논란은 비교적 규모가 큰, 괜찮은 중견기업 채용 과정에서 많이 불거집니다. 중소기업은 일 할 사람이 모자란 곳이 대부분입니다. 또 대기업은 신입사원 배치 시스템이나 입사 교육 과정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논란이 많지 않습니다. 해당 기업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정규직은 한 명이라도 채용하기가 부담스러운 만큼 최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밖에 없다’는 변명이지요.

정부가 청년층의 정규직 일자리 만들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젊은 구직자들은 절박합니다. 지난 3월 기준 국내 전체 실업률이 4.5%, 청년실업률은 11.6%입니다. 청년실업률은 1997년 IMF 이후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불친절한’ 혹은 ‘의도적인’ 채용 절차는 취업준비생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갑질’로 비취질 수 있습니다.

김지예 잡플래닛 이사는 “고용형태나 처우 조건 등 구직자들이 기업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채용 모집 공고의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각 기업의 채용공고가 마치 기업 공시와 같이, 보다 공식적인 문서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끝) /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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