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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외교 결례 논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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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현 정치부 기자)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동이 국내에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일부 국내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외교적 결례’를 보였다는 지적을 제기했는데요. 청와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방송에서 이를 반박했습니다. 당시 상황은 이렇습니다.

두 정상이 단독 회담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모두발언을 했습니다. 이후 기자회견이 진행됐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옆에 앉혀 두고 ‘원맨쇼’를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가진 것이 무례하다는 겁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미국에서는 조금 더 자유롭게 질문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예상치는 못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의 이같은 설명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는 한 기자가 정상회담과는 상관없는 성추문 관련 질문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멍청한 질문(stupid question!)”이라며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기자회견이 이뤄진 것도 기회가 될 때마다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통령이 대답하는 미국 언론의 문화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에게는 통역이 필요해 매끄러운 기자회견이 이뤄지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기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문 대통령에게 아예 통역이 되지 않는 상황도 빚어졌습니다.

기자회견은 당초 예정된 단독회담 시간을 훌쩍 지나서까지 진행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감사하다”며 기자회견을 마칠 뜻을 밝혔는데도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한국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 후의 상황이 논란이 됐는데요.

한 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와 한국의 역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한·미가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통역이 필요 없겠다(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 이유를 설명했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이 크게 터져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이 게시한 스크립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예전에 들어봤던 내용일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있었던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통역이 필요 없겠다.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 함’이라고 기자단에 공유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화’ 논란이 벌어진 겁니다. 송정화 청와대 해외언론비서관실 행정관은 “웃음 소리 때문에 정확한 워딩을 들을 수 없지만, 뒤에 말이 짧아서 It's good 정도의 말을 했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제 여러 방송의 영상을 보더라도 뒷부분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까지는 명확하게 들리지만 이후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입모양을 보면 ‘I've heard it before’보다는 짧고 ‘It's good’보다는 깁니다. 결국 백악관 스크립트나 청와대 해명 모두 정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회담 분위기와 트럼프 대통령 태도 등을 보고 유추하건대 부정적인 뉘앙스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적극적인 해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고민정 부대변인은 “하늘의 달을 가리킬 때 달을 보라는 행위지, 손가락을 보라는 게 아니다”며 “이러한 사안은 손가락을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고, 논란이란 표현도 많이 나오는데, 논란이란 표현은 언론이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장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해 주는 건 언론 본연의 임무”라고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악의가 없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정상 외교에 비춰보면 비상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격식과 예의를 차리는 한국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태도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도 무례라고 해석할 수 있는 행동을 했는데요. 기자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두 정상이 악수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요청이 있자 메르켈 총리가 “기자들이 악수하라고 한다”고 말까지 했는데도 무시했습니다. “메르켈의 난민 수용 정책은 미친 짓”이라며 맹비난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 제 성격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고 솔직한 행동은 분명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를 청와대가 나서서 ‘달을 보라 했더니 손가락을 본다’며 지적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의문입니다. 외교 관계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한데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일부 국민들이 (비록 오해였을지언정) 받은 상처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외교 참사’라며 문 대통령의 외교를 깎아내리는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이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는데요. 지난 2015년 청와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을 잊어버려 답변을 머뭇거린 적이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긴 답변이 있고 나서였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질문이 오래돼서 기억을 못할 거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이 비웃음을 당했다, 능욕을 당했다”며 조롱했습니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오바마 대통령이 상대국 정상을, 그것도 여성(lady)을 대놓고 비웃을 리는 만무한데도 말이죠. 결국 청와대든, 일부 언론이든 보고 싶은대로 본 건 아닐까요. (끝) /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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