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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평판사회 앵글로 본 구본무 LG 회장 추모 분위기..축적된 일상이 가져다 준 시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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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중소기업부 부장)“이런 일은 아마 10년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슬픈 일이지요.”

한 컨설턴트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인의 별세 소식에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에 대한 얘기였다. 의외성을 말하고 있었다. 기업인을 추모하고, 진심으로 명복을 비는 것은 예외적 현상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해 한국인들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코드는 ‘악당’이기 때문이다. 구본무 LG회장은 달랐다. 가까운 동네 부자 아저씨가 갔다고 느끼는 듯했다.

이를 보면서 다시 평판사회란 단어를 떠올린다. 대한항공과 정반대의 의미에서 LG는 평판사회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네티즌들의 구본무 회장에 대한 추모 여론을 평판사회를 구성하는 3가지 단어로 정리해 봤다.

◆시간

“평판은 쌓는데 수십년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5분이면 충분하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살아있는 전설 워렌 버핏의 말이다. 평판에는 시간이 의미로 스며들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평판은 축적의 결과라고도 할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LG와 관련된 미담중 하나가 독립군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일이다. 2018년 국내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았다. 하지만 할수 없다. 도와줄 독립군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작고한 함태영 오뚜기 회장은 1980년대부터 수천명의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도왔다. 그가 별세했을때 그 어린이들이 나타나 선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다른 대기업이 당장 전국의 수천명 어린이 수술비를 대준다고 해보자. 사람들이 오뚜기와 같은 대접을 해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평판은 축적된 시간의 결과다.

◆인식

“인식이 현실이다.” 평판사회를 말할때 쓰이는 가장 유명한 문구다. 이 식상한 문구가 구본무 회장과 LG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LG가 진짜 착한기업이냐”고. 답은 “아니다” 또는 “모른다”이다.

LG라고 모든 대기업이 하는 갑질을 하지 않았을까. 했을 것이다. 구본무 회장이라고 다들 하는 일탈을 해보지 않았을까. 아마도 했을 것이다. 과장광고도 했을 것이고, 투자자를 기만한 행위도 했을 것이다. GS LS LIG 등 수많은 그룹을 계열분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그 많은 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그 내용은 여전히 취재파일로 남아있다.

다만 구본무 회장과 LG는 사람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치명적 오류를 피해갔다. 억울한 기업들은 이 문구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인격이 나무라면 평판은 그림자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림자를 나무라고 하면 그것이 곧 나무다.”

◆정체성

이런 LG에 대한 인식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구본무회장이 만들어 놓은, 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LG의 문화적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볼수 있다. 그들이 보여준 두가지 행위가 대표적이다. 얼마전 LG는 소방관들이 소방복 빨래를 하는게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소식을 접하고 이들을 위한 전용 세탁기를 개발해 증정했다. 의인상도 비슷한 류에 속한다. LG는 사회에서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매년 의인상을 준다. 상을 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을 받는 사람이 원하면 이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다.

두가지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방관 전용 세탁기를 개발할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을 개발해 기부하게 해줬다는 것과, 굳이 상을 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도 큰 상관이 없다는 자세 사이의 공통점. 사회는 이런 LG의 모습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사회와 함께 하려는 기업이라는 정체성 말이다. 실제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LG는 튀지 않는다.

이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한가지 사례는 LG를 떠난 직원들이다. 물론 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자신이 다니던 LG에 대해 욕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오히려 좋은 기억이 더 많다. “기업의 적은 이직한 직원들”이라는 일반적 사례에서 벗어난 것 또한 문화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구전전통의 귀환과 잊혀질 권리의 박탈

LG의 선행을 퍼뜨린 것은 기존 미디어가 아니다. 스스로 나선 네티즌들이다. 그 도구는 SNS였다. 미디어에서 한줄 나온 얘기를 직접 검증하고 퍼날랐다. 감동을 받은 이들이 직접 전하는 얘기는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구전은 최근 100년을 빼면 인류가 줄기차게 사용했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다시 돌아온 구전전통의 시대, 사람들은 차가움과 따듯함을 더 냉혹하게 구별해내고 있다. 그 대상이 사람이건 기업이건.

잊혀질 권리의 실종은 LG의 반대편(평판의 측면에서)에 있는 기업들에 치명적이다. 과거에는 신문에 한번 나고 나면 끝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가끔씩 이런 푸념을 듣는다.“도대체 언제적 얘기인데요.” 기업인들이 억울해 할만 하다. 5,6년전 더 길게는 10년전 얘기까지 끄집어 낸다. 마치 지금 얘기인 것처럼. 잊혀질 권리는 사라졌다. 검색만 하면 동영상, 녹취, 기사 파일이 줄줄이 살아서 다시 고개를 쳐든다.

평판사회의 새로운 단면이다.(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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