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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금통위원이 강조한 '한은 나침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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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입을 열었습니다. “첫 번째 임기의 거의 모두를 함께 했습니다. 떠나 보내는 마음이 각별합니다. 우리 경제가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지난 4년은 어느 때보다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총재가 이렇게 각별한 마음을 전한 상대는 11일 4년 간의 임기를 마친 함준호 한은 금융통화위원이었습니다. 이날 서울 태평로 한은 본관 17층에서 함 위원의 이임식이 열렸습니다. 이 총재를 비롯해 윤면식 한은 부총재, 고승범·신인석·조동철·이일형 위원과 함 위원을 따랐던 많은 ‘한은맨’들이 참석했습니다.

이 총재는 함 위원에 대해 “거시경제에 대한 남다른 식견을 바탕으로 한은과 금통위가 적절한 통화정책을 통해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금통위 운영에 더할 나위 없는 자질을 갖춘 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임사를 앞둔 함 위원의 표정은 그리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보였습니다. 4년간의 무게를 내려놓는 후련함과 해방감,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여러 상황이 맞물리는 듯 복잡한 심경의 표정으로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함 위원은 “취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흘러 이 자리에 서게 되니 감회가 많다. 어느 외국 대통령이 임기 중 제일 좋았던 때는 당선 직후와 마지막 퇴임 때였다는 회고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다”고 이임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4년은 말 그대로 격변의 기간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중국 주가 폭락, 대통령 탄핵, 북핵 사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한 정상회담까지 마음 졸이는 순간의 연속이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함 위원은 “선진국이 양적완화에 이어 마이너스 금리정책까지 펴는 가운데 한국도 성장 활력 저하와 과도한 저물가 우려로 금리를 5번이나 내렸다”면서 “마치 느슨해진 밧줄을 당기는 것처럼 좀처럼 화답하지 않는 경제를 보면서 답답함과 좌절의 심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함 위원은 “‘세사정방현’ 즉 ‘세상의 모든 일은 고요해져야 비로소 드러나 보인다’는 명심보감의 시구를 되새기며 복잡하고 혼란스러울수록 멀리 보고 본질적인 흐름에 부합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연이은 악재 속에서도 한국 경제가 잠재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안정된 성장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기가 다소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금리 정상화의 첫발을 떼고 떠나게 돼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도 했습니다.

함 위원이 4년 전 취임하면서 가장 강조했던 건 통화정책 운영체계의 선진화와 금융안정 기능 강화였습니다. 임기 중에 역점을 두고 노력하겠다는 일종의 목표였습니다.

그는 “기준금리 결정 횟수를 줄이면서 통화정책 운영의 일반원칙을 정립하고 정책 체계 개선과 커뮤니케이션 강화에 힘썼던 일, 금융안정 분석기능을 제고하고 금통위의 금융안정 점검회의를 본격화 했던 일 등이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함 위원은 “모두 42번의 기준금리 결정을 하면서 노안과 허리 디스크를 얻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띄운 뒤 이내 엄숙하게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한국 경제는 고령화와 저출산, 자본 및 고용시장의 비효율성과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생산성 하락, 양극화와 가계부채 누증 등 근본적인 난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례없는 통화완화와 부채 확대에 힘입은 최근의 글로벌 경제 회복세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도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러면서도 한은에 대한 기대와 애정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은의 인적자원과 잠재력이 선진 중앙은행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 심층적이고 중립적인 연구 분석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중앙은행”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은의 위상과 역할이 막중해진 만큼 한국 경제가 순항할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에 매진해달라는 당부이기도 했습니다.

올 가을부터 연세대 강단으로 돌아가는 함 위원은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내실 있는 강의와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순간들은 일생의 영예로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활기찬 캠퍼스가 보이는 연구실에서 따뜻한 차라도 한잔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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