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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초’ 화장품업계서 잇따른 미투 왜?…“고질적인 승진차별로 성범죄 리스크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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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빈 지식사회부 기자) 이달 초 아모레퍼시픽의 로드숍 브랜드 이니스프리의 한 직원이 상사로부터 노래방 등에서 성추행 당했다고 온라인에 글을 올리며 고발했습니다. 해당 가해자는 팀장 보직이 해임됐고 팀을 옮겼죠. 이번 사건은 어퓨(에이블씨엔씨), 더샘인터내셔날에 이어 화장품 업계에서만 세번째 ‘미투’입니다. 모두 남성 상사가 다수의 여성 부하직원을 오랜기간 성희롱·성추행한 것으로 수법도 비슷합니다.

여성이 다니기 좋은 직종으로 알려진 화장품 업계에서 미투 고발이 잇달아 터지고 있는데요. 우스갯소리로 “화장품 회사에 남자가 가면 역차별 당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곳에서 이런 사건이 잇따르는 것은 승진차별이 핵심 원인이라는 설명입니다. 입사할 때는 여직원 수가 남직원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데도 팀장급부터는 남성 위주로 재편되면서 다수의 여성을 소수의 남성이 관리하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죠. 한 화장품 회사 직원은 “처음부터 수도 많지 않은 남성 직원들은 임원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습니다.

정말인지 금융감독원 공시를 조회해봤습니다. 화장품 업계에선 회사 전체에 여성임원이 1~2명 뿐이거나 아예 없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미투가 터진 에이블씨앤씨는 전체 임직원 중 여성 비율 48%임에도 임원 11명 중 여성은 단 1명 뿐이었습니다. 두 번째 미투가 나온 더샘인터내셔날에는 여성 임원이 아예 없습니다. 여성 직원 비율 69%로 ‘여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도 임원 14명 중 여성은 고작 1명입니다. 토니모리의 유일한 여성 임원인 배진형 대리(사내이사)는 창업주 배해동 회장의 딸입니다.

성범죄 가해자에 관대한 기업 규정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에이블씨엔씨는 미투 고발이 나온 뒤 “사건을 조사중”이라고만 설명하다 가해자에게 어떤 징계를 내렸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가해자 본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 계정에 자진퇴사했다는 글을 올렸다. 소비자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본인이 스스로 퇴사했습니다. 소비자들은 “퇴직금 받고 이직도 할 수 있는 의원면직이 아닌 해임이나 파면 조치를 했어야 했다”며 불매운동을 이어가고 있지요.

아모레퍼시픽의 한 직원은 “택시기사 욕설 사건 때는 직원 두명을 중징계를 내리더니 이번 성추행 가해자는 보직 이동으로 끝냈다”며 “회사가 성범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된 업체들은 “내부 규정 상 사법처리가 안 된 사안을 근거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다”고 반박했는데요. 업계 관계자는 “가해자인 팀장·임원들은 회사에서 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징계 과정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끝) /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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