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韓銀에서 '2017년판' 단체 패딩이 사라진 이유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은정 경제부 기자) 올 겨울은 유난히 춥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개의 옷을 껴입기 쉬운 넉넉한 사이즈의 겉옷이 유행입니다. 특히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겨울 점퍼 롱 패딩은 초중고교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죠.

직장에서 보면 남성들의 패딩 조끼가 겨울 필수 아이템으로 이미 자리 잡았고요. 점심 시간에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무리 지어 식사를 하러 가는 직장인들이 동일한 패딩 점퍼를 입고 있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회사에서 단체로 지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사내 복지죠.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3년에 한 번 꼴로 은행원들에게 단체 패딩 점퍼를 지급했습니다. 단순한 ‘회사의 선물’ 차원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한은은 올 하반기부터 본관 리모델링과 별관 재건축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워낙 건축된 지 오래돼 낮은 내진 수준과 건물 노후화가 문제가 돼 서죠. 이에 따라 2020년 상반기까지 본래 터인 서울 중구 남대문로를 잠시 떠나 세종대로에 있는 옛 삼성 본관 건물로 이전했습니다. 이주열 한은 총재를 비롯해 금융통화위원, 집행간부,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사했습니다.

남대문 시절 ‘한은맨’들 사이에선 “겨울이 무섭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오고 갔습니다. 낡은 건물 탓에 보온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이면 사무실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서 입니다. 사실 한은은 정부에서 시행하는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대책’ 대상 기관이 아닙니다. 공공기관들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여름철엔 실내온도를 28도 이상, 겨울철엔 18도 이하를 유지하고 있거든요.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설립된 한은은 엄밀하게 따지면 공공기관이 아니지만 통화신용정책을 맡고 있는 중앙은행 업무 특성상 가급적 공공기관 대상 에너지 절약 대책 수준을 지키고 있답니다. 이렇다 보니 겨울엔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업무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직원이 장갑을 끼고 개별 온풍기를 따로 틀어 놓고 업무를 볼 정도였고요. 이 때문에 한은은 몇 년 주기 마다 직원들에게 패딩 점퍼를 나눠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옛 삼성 본관으로 이사하면서 이런 고충이 사라졌다고 하네요. 옛 삼성 본관 건물은 현재 절반은 삼성카드가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에만 한은이 세 들어 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각 층이나 지역마다 별도로 난방이나 냉방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합니다. ‘세입자’인 한은 입장에선 건물 운영 및 관리 관련해선 아무래도 ‘건물주’의 지침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일이고요.

한은 관계자는 “확실히 옛 삼성 본관 건물로 이사와서 겨울철 업무가 수월해졌다”며 “추위에 떨며 근무하던 예전 남대문 시절을 생각하면 감지덕지”라고 농반진반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올해는 선례를 보면 단체 패딩 점퍼를 지급할 시점인데, 별도로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네요.

사실 단체로 지급되는 패딩 점퍼엔 ‘BOK’(Bank of Korea, 한은의 약자)가 새겨져 있어 외출할 땐 입기가 꺼려진다는 말도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018년 예산 심사를 하고 있습니다. 단체 패딩 점퍼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 한은은 내년에도 직원 복지 관련 지출에서 가급적 호응도가 높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예산을 집행할 방침이라고 하네요. (끝)/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