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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십 북클럽 ‘트레바리’ 인기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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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나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서울 압구정 뒷골목에는 조금 수상한 룸살롱이 있다. 젊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해진 시간에 오가는데, 인사불성 만취한 손님은 없다. 슬쩍 안으로 들어가 엿본 풍경은 꽤나 인상적이다. 비싼 수입산 양주로 가득해야할 바(bar)에 술 대신 책이 가득하고, 오가는 대화 속에는 ‘책’ 이야기가 녹아있다. 이곳은 요즘 핫하다고 소문난 독서 클럽 ‘트레바리’의 아지트다.

‘트레바리’는 독서 모임 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독서 모임’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돈 내고 하는 독서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4개월 멤버십으로 운영되며 월 1회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 회비는 클럽장이 없으면 19만원, 클럽장이 있으면 29만원이다.

클럽장은 어떤 독서 모임을 할 지 테마를 잡고 책을 선정하고, 대화 주제를 정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활동 중인 클럽장으로는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제일기획 이나리 이노베이션센터장 등이 있다.

독서 모임의 회비치고는 다소 비싼 가격에 누군가는 ‘그 돈 내고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이 있냐’며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한 시즌 트레바리에서 열리는 북클럽만 100여개가 넘을 정도다.

트레바리의 윤수영(29) 대표는 “대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트레바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30대 중반 직장인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서비스 시작 후 현재 7번째 시즌을 운영 중에 있으며 11월 말에는 시즌 8의 멤버십 모집을 시작할 예정이다.

독서 모임도 ‘밥벌이’가 되나요?

‘독서 모임’이 밥벌이가 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사실 윤 대표의 생각도 그랬다. 독서 모임을 가장 좋아하고 꾸준히 해 오면서도 창업 아이템을 찾을 때 이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포털 사이트 다음(현 카카오)에서 모바일 콘텐츠 기획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창업에 대한 열망이 있어 퇴사를 하고 윤리적 패션 관련 사업을 했죠. 얼마못가 망했지만요.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때 친구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 독서 모임은 어떠냐’고 말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독서 모임을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됐죠.”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다보니, ‘된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검증 과정에 더욱 신중했다. 일단 ‘사람들이 영리 독서 모임에 참가할까’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회비를 12만원으로 책정하고 모객을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람들이 모였다. 세상에는 윤 대표처럼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음 달에는 ‘이 중 몇 명이 재가입을 할까’를 확인했고, 그 후에는 회비가 적정한지, 멤버십 기간은 어느 정도로 할지 등을 하나씩 실험했다. 그렇게 수정과 보완 과정을 거쳐 회비는 사업 가능한 수준의 19만원으로 확정했고, 멤버십 기간은 커뮤니티가 안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4개월로 정했다.

입소문을 타고 회원 수는 급격히 늘어갔다. 첫 시즌 4개 클럽으로 시작했던 것이 매 시즌마다 2배 이상씩 성장했다. 재참여율도 60%가 넘는다.

넌 독서 모임만 해, 나머지는 트레바리가 할게

윤 대표는 트레바리의 인기 요인을 ‘운영 역량’으로 꼽았다. 멤버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것 등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희생하고 노력해야하는데 그 부분을 트레바리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이다.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은 원하는 북클럽을 선택하고, 오직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모임을 할 때마다 ‘어디서 모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트레바리에서 제공하는 ‘아지트’로 정해진 날짜, 시간에 찾아오면 된다. 처음 트레바리 서비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상가 건물 4층에 위치한 사무실 한 칸만을 모임 장소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북클럽이 100여개가 넘다보니 4층과 3층 전체, 그리고 지하까지 총 3개 층을 모두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지하는 룸살롱으로 운영 되던 곳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폐업한 룸살롱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 아지트로 활용 중인데, 이전 가게의 간판도 떼지 않았다.

“우리끼리는 ‘트레바리 살롱문화’라고 불렀거든요. 룸살롱과 같은 ‘살롱’이라는 것에서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방 크기도 모임을 하기 적절했고, 룸살롱을 이용해 독서 모임을 한다는 것이 어쩐지 조금 통쾌하기도 했고요. 마침 장소 확장이 필요하던 때라 바로 계약을 했죠.”

곳곳에서 보이는 술병은 이전 가게의 흔적일까 싶지만, 실제 트레바리에서 판매하는 술이다. 북클럽에 참석하는 이들은 간단히 맥주 한 잔하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다.

대학 시절 독서모임에서 만든 ‘독후감 제도’

트레바리가 입소문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진짜 독서 모임’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여타 독서 모임은 책은 뒷전, 오직 친목에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트레바리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멤버들은 한 달간 정해진 책을 반드시 읽고 와서 책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는 ‘독후감 제도’라는 트레바리만의 ‘영업 비밀’이 있다. 그 달 북클럽에서 다룰 책을 미리 읽고 정해진 기한까지 정해진 분량으로 독후감을 작성해 제출해야한다. 만약 마감 시간에 1초라도 늦거나, 분량보다 한 글자라도 덜 쓰면 해당 월의 모임에 참석이 불가하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책을 읽어야 하잖아요. 독후감을 사전에 제출하면 모임에 오는 모두가 그 책을 읽고 오는 거죠. 그럼 일단 독서 모임의 퀼리티가 보장 되요. 저는 독후감을 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보가 빈곤해 힘든 사람보다 정보 과잉으로 힘든 사람이 더 많은 요즘,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는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이를 위해서는 책을 읽고 내 언어로 정제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독후감 제도는 윤 대표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독서 모임에서 활용하던 것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 친구들과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독서를 위한 교양 있는 모임을 이어 나가고 있다.

“‘매일 술 마실 거,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자’는 것이 독서 모임의 시작이었죠. 경영대생, 미대생, 교대생 등 중학교 동창 남자아이들이 모였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독서’는 완전 뒷전이고 그냥 친목도모만 하는 모임으로 변질됐거든요.”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미약했다. 윤 대표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총대를 메기로 했다.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연락하며 참석을 독려했고, 모임의 성격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엄격한 규칙인 ‘독후감 제도’도 만들었다. 물론 제도에 반발해 모임을 박차고 나간 친구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제대로 된 독서모임’이라며 참석을 희망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학 시절 윤 대표가 만든 독서모임을 거쳐 간 이들이 수백 명에 이를 정도다.

“조금만 게으르게 살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는 세상인 것 같아요. 그러니 더욱 부지런하게 다양한 생각을 접하며 주체적으로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그것을 할 수 있는 게 독서 모임이라고 생각하고요. 독서 모임의 장점 중 하나는 여러 명이 한 권의 책을 함께 고른다는 거예요. 혼자서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분야의 책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되죠. 모인 사람들이 각자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다 보니 하나의 책을 해석하는 방식도 모두 달라요. 생각이 편협해지지 않고,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어요.”

윤 대표는 압구정 한 곳에만 있는 아지트를 다른 지역으로도 늘려볼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 지역 외에서도 모임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회원들이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은 트레바리의 운영 역량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를 테스트해보려 한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가 트레바리의 비전이에요. 독서 모임을 하면서 지적으로 성장하고, 깊은 우정도 쌓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트레바리란 커뮤니티가 삶의 더 많은 부분을 도울 수 있다면 좋겠어요.” (끝) / phn0905@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6(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