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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금감원, 불행의 씨앗은 20년전에 잠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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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 금융부 기자) 금융감독원은 요즘 혼돈 그 자체다. 임원진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 상태다. 발단은 지난달 20일 감사원의 감사 결과다. 감사원은 금감원의 임직원이 채용 비리를 저질렀고,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차명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일부 임원에 대해선 검찰 수사를 의뢰했으며, 검찰은 이틀 뒤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금감원은 지금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항변한다. 관가에서도 감사원의 감사결과 수위가 중도에 몇 차례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징계를 담았었는데, 중간에 어떤 이유로 중징계로 바뀌었다는 전언도 있다. ‘표적 감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월 경력 변호사 특혜채용 혐의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거쳐 기소된 김모 부원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게 감사원의 감사결과 ‘상향 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사결과가 정말 맞는지, ‘비리’란 딱지를 붙일 정도로 잘못된 일인지는 앞으로 있을 법원 재판에서 가려진다. 그 때까지 이번 감사결과에서 지적당한 금감원 임직원들은 일단 ‘무죄’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서다. 물론 현실적으로 감사결과에 이름이 오르내린 금감원 임직원들은 인사 등 유무형의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금감원은 억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감사결과에서 채용비리에 연루됐다고 지적받은 A국장은 당시 결정 과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결재라인에 있었다는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금감원의 문제가 적발된 건 비단 이번 한번이 아니라는데 있다. 거의 3~4년에 한 번씩 금감원 직원들이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거나, 사실로 드러나 옷을 벗어야 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쯤되면 금감원 직원들의 일탈이 아닌 조직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태생부터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데 따른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7년 한국은 국가 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바로 외환위기다. 무수한 대기업이 부실경영으로 무너졌지만 당시 금융감독 시스템은 사전에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시 금융감독 권한은 여러 기관이 나눠 갖고 있었다. 한국은행은 은행감독원을 산하 기관으로 두고 있었으며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도 따로 존재했다. 세 기관간 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보철강 부도 사태는 금융감독 기구 재편의 결정적 신호탄이었다. 부도를 낸 한보철강은 60개가 넘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는데 업권별 감독기구가 다르다보니 전혀 협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의 정부·정책시스템에 대한 개편방안을 권고하는 역할을 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대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고 했다. IMF에 대응할 힘과 역량이 없던 당시 정부는 이를 그대로 따랐다. 1997년 12월 ‘금융감독기구 설치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정경제원,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에 흩어져 있던 금융감독업무를 하나로 합해 금융감독원을 만들었다. 또 상위 기관으로 금융감독위원회를 뒀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직하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IMF는 금감원을 ‘무자본 특수법인’이란 형태로 두도록 권고했다. 표현이 어렵지만 쉽게 풀자면 ‘정부가 위임한 금융감독의 기능을 하되, 신분은 민간인으로 그대로 둬야 한다’는 얘기다. 법인을 운영할 자금(자본)은 한국은행, 정부, 민간 금융회사들이 갹출해내도록 했다. 민간 금융회사가 자신들의 건전성을 관리감독할 민간기구의 운영비(감독분담금)을 대는 이상한 형태의 조직이 생긴 셈이다. 당시 정부 내에선 ‘금융감독 기능을 민간 기구로 두는 건 해외에서도 선례가 없다’며 법률적인 행정기관으로 설치하자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여기에 반대했다. 통합 감독권을 쥔 금감원을 행정기관으로 두면 ‘관치’가 심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학계에서도 한국은행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논리는 비슷했다. 정부 행정기관으로 금감원을 두면, 경제관료 출신 ‘관피아’들이 금융회사 경영에 극도로 개입할 것이란 우려였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으로 흡수 통합될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등 노조의 반발도 거셌다. 행정기관이 되면 급여가 공무원 수준으로 대폭 삭감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월 공식 출범한 금감원은 △민간인들로 구성된 특수법인으로 △민간 금융회사로부터 활동비를 받아 금감위가 위임한 감독권을 대행하는 기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민간’이 ‘민간’을 감시 감독하는 이상한 조직의 탄생이다. 이런 구조는 2008년 금융위원회가 설치된 이후에도 대체로 유지됐다. 2008년에 바뀐 건 금융위원장의 금감원장 겸임체제를 없앤 것 뿐이다.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대로다. ‘반민반관’의 모습을 지는 금감원은 금융회사 감독권 대행이란 역할을 통해 무한 확장했다. 지금은 좀 덜하지만 불과 2~3년전만해도 민간 금융회사 현장 감독에 나서는 금감원 직원들의 파워는 대단했다. 금감원 전체 직원 수도 2000여명으로 늘었다. 임금도 일반 공무원에 비해 더 받는다. 조직 예산도 법률상으로는 금융위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사실상 통제권 밖에 있었다. 20년 전 반민반관의 특수법인으로 만들었던 결정이 지금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같은 태생적 문제점 때문에 일각에선 ‘금감원의 행정기관화’ 얘기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금융위 내부에서도 이런 얘기가 곧잘 나오고 있다. 다만 이 논의가 진척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000여명에 달하는 금감원 직원을 공무원화하는 것 자체가 어렵거니와, 그 과정에서 임금 삭감, 강도높은 윤리규정 적용을 받아야 하는 금감원 노조의 반발도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같은 비정상적 조직체계를 유지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관치가 걱정된다면 이를 막을 통제장치를 두면 되는 것이고, 임금삭감 문제는 금감원 직원들을 별정직 공무원으로 지정해 일부를 보전해주면 된다는 대안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여전히 경제·경영학과 교수들 상당수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금감원장에 취임한 최흥식 원장도 과거 학계에 몸담을 당시, “감독기능을 관에 주기 보다는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론은 아마도 내년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나올 것이다. 개편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금감원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행정기관인 ‘금융감독청’으로 바뀔 것인가. (끝) /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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