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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도 넘은 공정위원장의 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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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노경목 기자) “만물 박사가 따로 없습니다. 기업 경영 기법부터 운영 시스템, 법적 이슈까지 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되겠네요.”

최근 한 대기업 임원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대해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과 5일 두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이 밝힌 대기업들에 대한 ‘식견’에 대해서다. 28일 인터뷰에서 그는 “삼성의 미래전략실 해체와 자사주 소각은 의사결정을 잘못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시간만 낭비하다가는 삼성과 같은 꼴이 날 것“이라고 했다. 5일 인터뷰에서는 이해진 네이버 전 이사회 의장을 겨냥해 “잡스같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 재판부가 형량을 감경해 줄 것으로 봤다면 정말 스투피드(stupid·멍청한)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최근 이슈가 되는 국내 주요 기업의 경영 현안에 대해 모두 한마디씩 얹었다.

문제는 이같은 발언이 공정위의 수장으로서 알맞느냐다. 공정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독점 및 불공정 거래의 예방, 소비자 정책 수립 및 집행’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별 기업의 컨트롤 타워와 경영 결정에 대한 내용을 공정위원장이 언급해야할 근거는 없다. 창업에 성공해 시가총액 24조원 규모의 기업을 일군 이 전 의장에게 롤모델까지 친히 제시해줘야할 이유도 모르겠다. 정책 입안과 실행에 대한 책임 없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던 교수 시절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김 위원장은 각종 논란에도 지난 7월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의 증인으로 나간 뒤 5년형이 떨어지자 “내 증언이 유죄판결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심판’으로서의 책임감보다 ‘선수’로 경기장을 뛰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다.

의사 전달 방식도 문제다. 김 위원장은 두 차례 모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가장 무서워하는 정부 부처인 공정위 수장의 말에 나서서 반박할 기업은 없다. 공정위 권한 바깥에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여론을 몰아가는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것으로 본다면 ‘스튜피드한 생각’일까.

김 위원장은 지난주 잡스에 대해 두 차례 언급했다. 이 전 의장에 대해 언급한지 이틀이 지난 7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제 2의 잡스로 진화 중”이라고 추켜세웠다. 구글이 장악한 세계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 토종 포털을 성공시키고,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통해 네이버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 전 의장도 김 위원장이 보기에는 문 대통령보다 한참 떨어지는 셈이다. 평생 기업을 연구해왔다지만 기업가와 기업활동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인식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무쪼록 말을 아끼고 심판의 역할로 돌아가길 바란다. (끝) /autonomy@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