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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고령화 연구에 푹 빠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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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통화신용정책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이 요즘 푹 빠져 있는 부문이 있습니다. 의외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바로 인구 고령화 문제입니다. 한은은 지난달부터 매주 고령화가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부 주제별로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주제는 광범위하면서 구체적입니다. 고령화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부터 시작해, 인구 구조 변화와 경상수지의 상관관계, 통일과 고령화, 고령화와 주택 시장 그리고 고령화가 대외투자에 미치는 영향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기준금리 결정을 떠올릴 겁니다. 기준금리 결정과 고령화가 어떤 연관성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기준금리 결정을 위해 한은은 물가나 성장률처럼 실물 경기 지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금융·외환시장 변동성과 각종 대내외 경기 변수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고요.

거시경제를 다루는 한은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세부적이고 다양한 지표를 관리·주시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업체 에어비앤비의 국내 이용 실적부터 국내 돼지지육시세까지 실물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폭 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는 것이죠.

같은 맥락에는 고령화는 한은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저출산·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 생산가능인구 감소세와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가팔라질 수 있습니다. 고령화는 노동 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고요. 경제 전반의 소비, 저축, 투자 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제 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 이슈인데도 주요 연구기관에서 고령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분석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죠.

이렇다 보니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고령화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계부채 리스크보다 훨씬 더 풀어나가기 어려운 과제”라고 강조하며 고령화 문제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겠단 생각을 밝혀왔습니다. 이 총재의 의지 덕분에 한은은 최근 1년간 외부 연구기관·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체계적인 고령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한은 내부에도 경제연구원이 있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제대로, 깊이 있는 분석을 하겠다는 이 총재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게 한은 안팎의 얘기입니다.

한은은 이번 고령화 연구를 통해 “고령화 추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10년 후 성장률이 0%대 중반까지 급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가 하면 “남북 통일이 돼도 고령화 완화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 “고령화가 진행될 수록 대외투자는 줄 것” 등 기존 연구와는 다른 시각의 분석 보고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높이면 고령화에 따른 성장률 하락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식의 사회적 해법도 함께 말입니다. 한은 뿐만이 아니라 현실이 된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전 사회적인 논의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인 듯 합니다. (끝) / 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6(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