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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산업, 다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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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희 한경비즈니스 기자) 모바일 게임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는 아날로그 게임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굴을 맞대고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다. 2000년대 반짝 인기를 끌다가 자취를 감춘 줄 알았던 보드게임이 최근 다시 인기몰이 중이다.

오프라인에서 관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에 교육적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디지털 게임 시대의 사각지대에서 아날로그 붐이 일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드게임에 부는 새바람을 조명했다.

#. “딱 한 판만 더해.” 고교생 이채리(17) 양은 최근 보드게임 카페에 푹 빠졌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재미 삼아 들른 이후 짬이 날 때마다 카페를 찾아 다양한 보드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 양은 “혼자 하는 모바일 게임과 달리 바로바로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할 수 있어 재밌다”며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데 보드게임은 시간 때우기에도 딱”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드게임 수요가 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보드게임 방, 보드게임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열풍이 불었다 꺼진 지 10여 년 만이다.

보드게임은 판 위에서 말이나 카드를 놓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게임을 말한다. PC 온라인, 모바일 게임과 달리 직접 대면해 게임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체스·바둑·포커·화투 같은 카드게임도 이에 속하지만 게임의 대상이나 주제에 따라 어린이·가족·파티·테마·전략·전쟁·추상 게임 등으로 구분된다.

국내에서는 1982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보드게임인 ‘블루마블’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보드게임의 역사가 시작됐다. 블루마블은 해외 유명 게임인 ‘모노폴리’의 아류작이지만 당시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블루마블을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큰 인기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보드게임 카페가 생기면서 산업의 전성기가 열렸다.

‘거품’은 오래가지 못했다. 보드게임 유행에 자영업자가 몰리면서 경쟁이 심화됐고 보드게임에 대한 인기가 시들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창업자들이 수익 측면에서만 접근하다 보니 보드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면서 “손님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보드게임을 추천하고 보드게임의 규칙을 잘 설명해야 하는데 난이도가 낮은 게임으로만 사업을 하다 보니 손님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드게임 개발 환경도 녹록하지 않았다. 국내시장은 해외 보드게임을 수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국내 보드게임 개발 업체와 개발자 수가 현저히 적었다. PC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의 시장성에 밀려 도전하는 이들도 많지 않았다.

◆1000억 규모…스마트폰·AR 접목

그로부터 10여 년 후. 마니아를 위한 게임으로 불리며 게임 판의 사각지대에 존재했던 보드게임이 다시금 조명 받고 있다. 주요 도심에서 보드게임을 위한 카페가 생기고 보드게임 대회가 연례행사로 열리며 보드게임 광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한 ‘디지털라이프 스타일’의 확대로 보드게임 산업이 성장세를 걷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을 통해 동일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예전보다 쉽게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이를 통해 규모 있는 게임 대회가 열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보드게임 개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유명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 따르면 2015년 1년간 킥스타터를 통해 모은 보드게임 펀딩 금액은 8500만 달러다. 이는 같은 기간 비디오 게임의 펀딩 금액인 4100만 달러의 2배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시된 게임 수는 1396개다.

이러한 전 세계 시장 트렌드를 따라 실제 보드게임 시장은 최근 5년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미국완구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약 16억 달러(1조7992억원)로 2014년보다 약 11% 성장했다.

이어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도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해즈브로(미국)’, ‘라벤스브루거(독일)’, ‘아스모디(프랑스)’ 등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보드게임 업체다.

국내시장은 산업의 역사가 짧다 보니 일반적인 게임 시장 통계나 완구 시장 통계에 잡히지 않아 정확한 시장 규모를 산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보드게임을 수입하거나 제작해 판매하는 회사들의 매출을 기반으로 파악한 국내 보드게임 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약 1000억원이다. 이는 국내 완구 시장의 약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최대의 보드게임 업체인 코리아보드게임즈는 매출이 약 10% 성장했다. 보드게임의 개발과 퍼블리싱(배급), 유통을 담당하는 이 회사 매출액은 2015년 245억원에서 288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45억원에서 49억원으로 늘었다. 이 밖에 행복한바오밥·젬블로 등 규모가 작은 보드게임 업체 또한 20% 이상 매출이 성장했다.

이러한 국내외 보드게임 산업의 매출 성장에는 보드게임의 변화도 한몫했다. 최근 출시되는 보드게임들은 스마트폰과 연계해 게임을 진행하거나 증강현실(AR) 기술을 적용하는 등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아날로그 게임이 갖고 있는 한계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활용 등으로 극복해 몰입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다.

땅따먹기 게임으로 유명한 모노폴리 시리즈도 최근 동전과 지폐를 없애고 카드 결제기를 도입했다. 카드를 통해 재산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종이로 만든 건물 대신 3차원(D)의 건물 모형이 들어서는 등 보드게임 전반에서 변화가 이뤄졌다.

◆교육에 치중…본연의 재미 찾아야

국내에서는 보드게임을 교육의 보조 기구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거세다. 보드게임이 지니는 구조적·사회적·정서적·교육적 특성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들이 교육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정부의 소프트웨어 의무화 교육 추진으로 교육용 보드게임이 본격적으로 늘고 있다.

예컨대 블루마블 형식의 ‘엔트리봇 보드게임’은 작은 판에 자신이 원하는 코드를 심고 실제 말을 움직이면서 프로그래밍 기초를 배울 수 있는 보드게임으로 실제 교육 현장에서 인기다. 순차·반복·판단과 같은 프로그래밍의 핵심 원리를 습득하고 알고리즘적 사고를 통한 논리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수익 측면에서도 교육용 보드게임이 인기다. 보드게임 업체 관계자는 “시장에서 교육용 보드게임이 돈이 된다”며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서도 교육용 게임의 매출 비율이 월등히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보드게임 산업의 무게추가 교육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유럽이나 북미는 보드게임 붐이 성인의 취미 게임으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국내 보드게임은 어린이용 보드게임으로 시장이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교육으로만 보드게임을 접근해선 곤란하다”며 “교육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재미가 줄어들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끝)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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