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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중국에서 재현되는 대성산업가스 인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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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재 증권부 기자) 국내 2위 산업가스 제조업체 대성산업가스 인수전이 한창 달아올랐던 지난해 말.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미국 에어프로덕츠(Air Products)가 입찰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예비입찰에 참여해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로 뽑혔지만 더 이상 실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였는데요. 역시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독일 린데(Linde)도 글로벌 본사와 미국 프락스에어와의 합병 결정 여파로 딜을 포기한 상황. 두 유력 해외 전략적투자자(SI)의 중도 포기에 골드만삭스PIA와 대성합동지주 등 매각 측은 애가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어프로덕츠가 돌연 대성산업가스 인수를 포기한 이유를 최근 한 외신 기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에어프로덕츠가 중국 최대 산업가스 회사인 잉더가스그룹(Yingde Gases Group)을 인수하기 위해 지난 1월 주당 6 홍콩달러를 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업가치 기준으로는 미화 15억 달러(약 1조7000억원). 인수가 성사되면 미국 기업의 사상 최대 중국 기업 인수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잉더가스그룹은 중국 산업가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데요. 4.8%의 점유율로 중국 6위에 그치고 있는 에어프로덕츠는 잉더가스그룹을 인수할 경우 단숨에 점유율 1위 자리를 꿰찰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시장점유율 1위(29.2%)를 차지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성산업가스를 인수해 한국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이는 것보다 잉더가스그룹을 사들여 중국 시장을 파고드는 게 더 구미에 당겼을 법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성산업가스 인수전에서 MBK파트너스에 고배를 마신 홍콩계 사모펀드 PAG가 잉더가스그룹 인수전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사실입니다. PAG 역시 최근 주당 6 홍콩달러를 인수 가격으로 제시했는데요. PAG는 에어프로덕츠와 달리 중국 경쟁당국의 합병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어 매각측은 PAG을 선호하는 상황. 에어프로덕츠는 PAG를 물리치기 위해 가격을 더 높일 의향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PAG는 대성산업가스 본입찰에도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냈지만 ‘거래 종료의 확실성’ 부문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일찌감치 고배를 마셨는데요. 내친 김에 자신들이 더 자신있는 중국 시장에서 잉더가스그룹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M&A 딜이 한국 딜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한국 딜의 결과가 중국 딜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을 보니 전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밸류에이션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WSJ에 따르면 에어프로덕츠와 PAG가 제시한 잉더가스그룹의 기업가치(EV·enterprise value) 15억 달러는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의 6.8배라고 합니다. MBK파트너스가 이번 인수를 통해 평가한 대성산업가스의 EV 2조원은 EBITDA 약 1500억원의 13.33배. EV/EBITDA 배수만 비교하면 대성산업가스가 2배에 달하는데요. 언뜻보면 MBK파트너스가 2015년 홈플러스에 이어 또 한번의 ‘과도한 베팅’을 했다는 일각의 우려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WSJ에 따르면 잉더가스그룹은 부채가 너무 많아 지난해 상반기 이자 비용이 순이익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고객사도 철강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고 하는데요. 최근 중국 정부가 철강 생산량 감축을 선언한 상황이어서 매출도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직전에 이뤄진 동종 업계 M&A보다 훨씬 낮은 멀티플이 적용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죠.

철강, 정유, 석유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에 가스를 공급하는 산업가스 업계는 이렇듯 글로벌 합종연횡이 한창인데요. MBK파트너스가 대성산업가스의 투자회수(exit)를 추진하게 될 3~5년 후에 세계 산업가스 업계 지형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 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끝) /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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