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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분장' 그대로 무대 올린 국립발레단 '라바야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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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결 문화스포츠부 기자) 지난 30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라바야데르’ 첫 공연이 열렸습니다. 오점 하나를 제외하면 괜찮은 공연이었습니다. 무희 니키아 역을 맡은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의 춤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무용수와 박자를 맞추지 못할 때도 실수 없이 감정선을 잘 끌고갔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프리드만 포겔의 밋밋한 연기가 드라마를 약하게 만들었지만, 집중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공연의 큰 오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공연 1막과 2막에 등장하는 ‘아랍계 아동’입니다. 부채를 든 하인 역인데, 이번 공연에는 예원예술학교 학생 6명이 무대에 섰습니다. 이들은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고 입술 부분은 밝은색으로 과장해 화장했습니다. 실제 아랍계와는 관계없는 ‘깜시 분장’이었죠. 외국에서는 ‘블래킹 업(blacking up)’ 혹은 ‘블랙페이스(blackface)’로 불립니다.

1막이 끝난 직후 이들의 분장이 인종차별적인 것이 아닌지 묻자 국립발레단 측은 “그런 얘기도 있긴 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답할 문제는 아닙니다. 블랙페이스는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통합니다. 19세기 백인 배우가 흑인을 표현하기 위해 쓴 무대 화장법으로, ‘검은 피부에 두꺼운 입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그로테스크하게 과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작품에서 특이한 옷을 입거나 가발을 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인종적인 신체 특징을 희화화했으니까요. 100여 년 전 백인 배우는 ‘그냥 재미있게 표현했다’고 했겠지만, 현재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2011년 캐나다 몬트리올 경영대학의 사례가 그렇습니다. 운동 경기 응원에 학생 일부가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CNN 등 여러 언론에서 보도되며 대중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대학 측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동양인과 관련된 비슷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3년 미국 방송인 케이트 고슬린은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가 인종차별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손가락으로 눈을 가늘게 만들어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커지자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전 남편에게 장난친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라바야데르의 블랙페이스 문제는 세계 무용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일각에서는 “라바야데르의 블랙페이스는 발레 역사의 한 부분이니 굳이 고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국립발레단은 3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 그대로를 무대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라바야데르는 1877년 초연된 작품입니다. 당시 발레는 ‘백인 상류층의 예술’이었고, 대부분 지역에서 노예제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자연스러웠던 시절 만들어진 작품이 현재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춤과 이야기도 인종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이를 모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죠.

하지만 요즘 예술계에선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예술성이 훼손되지 않는 한, 과거의 잘못을 그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공연은 현재의 관객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지난해 같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서는 블랙페이스 분장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01년부터 보통 무대 분장을 쓴다고 하더군요.

발레단은 종종 작품에 변화를 줍니다. 국립발레단도 원래 4막7장으로 구성된 긴 공연을 3막으로 바꿨습니다. “관객들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해 춤과 장면을 다시 짰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비하면 분장은 아주 사소한 부분입니다.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작품이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외국 예술가가 동양인을 표현하겠다며 눈에 테이프를 붙여 가늘게 만들고, 얼굴에 긴 ‘도사 수염’ 몇 가닥을 붙여 나온다면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어떨까요? 1970년대 영국 등에서 실제로 쓰였던 표현 방법입니다. 블랙페이스와 함께 인종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이후 사라졌죠.

강수진 예술감독이 2014년부터 이끄는 국립발레단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 발레단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이라는 자부심이 높고, 해외 공연도 자주 다닙니다. 동시대 관객들을 위한 고민을 좀 더 하는 것이 어떨까요? 무대 위 인종차별 문제를 가볍게 넘기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끝)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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