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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계 톱스타 홍광호, 소극장 뮤지컬 '빨래'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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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연 문화스포츠부 기자) 뮤지컬을 잘 모르는 분이더라도 홍광호의 이름은 익숙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유려하고 깊이있는 음색을 자랑하는 그는 한국인 최초로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 진출한 뮤지컬 배우입니다. 2014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베트남 장교 투이 역에 캐스팅됐죠. 그는 이 공연에서 열연하며 ‘2014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월드닷컴 어워즈’ 조연 남자배우상, ‘제15회 왓츠 온 스테이지’ 최고 조연상 등을 받아 세계적으로 실력도 인정받았습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미스 사이공’ 런던 공연을 마친 후 그는 지난해 뮤지컬 ‘데스노트’로 국내 무대에 복귀했습니다. 높은 몸값을 자랑하며 톱 스타 반열에 오른 그가 어떤 차기작을 선택할 것인가에 뮤지컬계의 관심이 쏠렸는데요. 2000석 규모 대극장도 충분히 채울만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창작뮤지컬 ‘빨래’(추민주 극작· 연출)였습니다. 서울 달동네에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250석 규모의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공연 중입니다. 홍광호가 맡은 역할은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 흔히 생각하는 대극장 뮤지컬 속 멋진 남자 주인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실 홍광호의 ‘빨래’ 사랑은 뮤지컬 팬들 사이에선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2008년 ‘지킬앤하이드’에서 주연을 맡으며 톱 배우 반열에 오른 그는 당시에도 차기작으로 대형 뮤지컬 대신 ‘빨래’를 선택했습니다.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은 그가 먼저 솔롱고 역할을 맡고 싶다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자신의 콘서트 때마다 ‘빨래’의 삽입곡 ‘참 예뻐요’를 부르며 작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죠.

지난 16일 ‘빨래’ 공연의 홍광호는 솔롱고 그 자체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몽골에서 왔스니다” “모 하세요. 학생입니까?” 등 한국말에 서툰 역할의 특성을 현실감 있게 연기했습니다. 빨래를 너는 나영을 보고 한 눈에 반하는 장면이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한없이 순수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이주 노동자 청년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부드럽고 깊은 음색으로 ‘안녕’ ‘참 예뻐요’ ‘내 이름은 솔롱고입니다’ 등 삽입곡을 부를 때 공연장 구석 구석까지 솔롱고의 마음이 전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부는 잔잔한 하모니카 연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점에서 불법 해고를 당한 선배를 위해 사장에게 대든 뒤 술을 마시고 취한 나영과 솔롱고의 집 주인이 싸움이 붙었을 때였습니다. 두 사람을 말리다 집 주인에게 두드려 맞는 장면에서 솔롱고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그는 노래합니다. “참아요, 외로워도 나를 기다리는 가족 때문에 참다 보면 가끔 잊어요. 우리도 사람이란 사실을…”

이번 공연을 보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제작돼 2005년 초연한 ‘빨래’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미국 브로드웨이 인근에는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라는 곳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외곽에 들어선 500석 미만의 중소형 극장가인데요. 대형 자본이 투입되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좀 더 실험적인 작품을 올리는 곳입니다. 국내로 치면 대학로 소극장과 비슷하죠. ‘애비뉴Q’ ‘헤드윅’ 등도 오프 브로드웨이 출신 뮤지컬입니다.

다양한 작품을 인큐베이팅해 브로드웨이로 진출시키는 오프 브로드웨이와 달리 국내에선 소극장 뮤지컬로 성공한 작품은 ‘빨래’ ‘김종욱 찾기’‘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으로 손에 꼽습니다. 최근 ‘빨래’는 ‘홍광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데요. 4월 공연 관람권 13회차가 판매 시작 2분 만에, 이달 공연 티켓 12회차는 3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의 시장에서 대학로의 숨은 보석 같은 소극장 뮤지컬로 돌아온 홍광호의 선택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끝)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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