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지면기사

저성장 시대…똑똑한 기업보다 건강한 기업이 성공한다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경쟁력 떨어뜨리는 한국 기업의 조직건강

한국 기업 조직건강도, 글로벌 기업 하위 25% 수준
'강력 리더십+성실성' 모델, 퍼스트 무버엔 부적합
30~40대에 초점 맞춘 문화로 조직 탄력성 높여야

강혜진 < 맥킨지 서울사무소 조직 부문 파트너 >

지난 15일 맥킨지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국내 100개 기업, 4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직건강도(OHI) 진단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한국 기업의 평균 건강지수는 55점으로, 글로벌 기업 1800개 중 하위 25% 수준이었다. 맥킨지의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상 최저 점수를 경신한 기업도 10개나 있을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조직과 개인 사이의 선순환 구조가 완전히 망가져 있다는 점이었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야근을 낳는 업무 방식 △낮은 생산성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영진 △직무 요건에 맞는 채용 방식 부재 △승진자 위주 성과 관리 등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본지 3월16일자 A3면 참조

기업이 업무에 맞는 인재를 발탁해 이들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조직 성과로 이어지고, 업무량이 아니라 개인의 성과에 따라 인사평가를 하는 선순환 사이클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의 많은 기업들에 조직건강도 문제는 ‘배부를 때 생각할 수 있는 얘기’로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조직건강은 기업 성과와 직접 연결돼 있다. 맥킨지가 전 세계 300개 기업의 성과를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추적 분석한 결과 조직건강도는 기업의 3~5개 년 미래 성과와 상관관계가 높았다. 조직건강도가 최상위 25%에 속하는 기업과 하위 25% 회사의 5년 후 주주총수익률(TRS) 차이는 세 배에 달했다. 개인과 조직의 선순환 기반 없이는 저성장 시대에 기업이 최상의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글로벌 기업을 살펴보면 조직건강도가 우수한 회사들은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한 ‘근육’을 갖추고 있다. 올림픽 선수가 종목별로 다른 근육을 키우듯 이들 기업도 각각 리더십, 시장, 실행, 지식 등 네 가지 유형 중 특화된 조직 모델을 가지고 있다. 리더십 중심 기업은 조직 내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고 이를 통해 성과를 내는 제너럴일렉트릭(GE) 펩시 등이 있다. 시장 중심 유형은 소비자에 대한 차별적 통찰력과 혁신으로 성장하는 구글 애플 등이 있고, 실행 중심은 직원들의 건전한 내부 경쟁과 프로세스 역량으로 성과를 개선하는 월마트 등이 있으며, 인재와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자산인 지식 중심 기업에는 대표적으로 골드만삭스가 있다.

'조직 건강'이 성과에 직결

맥킨지 조사 결과 국내 기업의 성과 방정식은 대부분 ‘실행 중심형’이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춰 보면 같은 유형의 글로벌 회사들과 차이가 두드러진다. 글로벌 기업들은 △탁월한 업무 프로세스 및 지식의 공유 △기업 가치에 따른 경영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십 △명확한 목표와 결과에 따른 성과평가 등이 핵심 역량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은 1970~1980년대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소수의 강력한 리더십 주도 하에 인적 자원을 대규모 육성해서 이들의 성실성에 의존하는 조직 모델을 형성해 왔다. 이는 ‘빠른 추격자’로 속도전을 하는 시대에는 통했지만 저성장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

조직유형 바꾸는 글로벌 기업들

실행 중심 유형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변화를 꾀하고 있다. 본연의 조직 문화에 유연성을 더할 방안을 찾거나 조직 유형을 다른 방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가전회사 필립스는 2011년 반 호튼 사장 취임 후 실행 중심 조직에서 시장 중심형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1조5000억원의 적자를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40개 사업부와 복잡한 조직 구조를 철폐하고 개별 시장의 니즈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해 본사와 연결되는 핵심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시장의 필요에 따라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하도록 조직 모델도 바꿨다. 이 같은 변신 뒤 필립스 주가는 3년 만에 20% 이상 올랐고, 최근 1조원 넘는 이익을 냈다.

국내 기업들도 이처럼 조직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당 기업에 맞는 조직 유형을 찾아 이를 위한 집중적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실행 중심형 조직은 이미 있는 조직의 DNA를 보완 및 강화하는 것이 가장 쉽다. 예를 들면 △조직 내 지식의 공유 △결과 관리의 공정성과 투명성 △임원의 혁신 주도 역량 등을 신속히 키워 조직의 체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조직건강도가 이보다 낮은 기업들은 근육을 키우기에 앞서 기초 체력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다. 이들 기업에는 기획, 재무, 인재관리를 포함하는 기본적인 경영 시스템과 임원급 리더들의 신속 육성체계를 포함하는 ‘기본 경영 툴 박스’를 설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운동선수들은 본인의 상태를 진단하고 훈련을 전담할 코치와 집중 트레이너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조직 변화 역시 코치와 트레이너 역할이 절대적이다. 국내 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코치 역할을 해 줄 리더가 없다는 점이다. 최고인사책임자(CHRO) 역할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진 기업들에 CHRO는 더 이상 인사 담당이 아니라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적 파트너다.

월마트는 기업의 기획과 운영을 총괄하는 ‘C3(CEO·CFO·CHRO)’ 멤버십을 구성했다. 이 회사는 기존 CHRO 업무 중에서 조직과 인재운영 전략만 남기고 단순인사 업무는 과감히 잘라냈다. 여기서 CHRO의 역할은 채용, 보상, 노무 등 일상 업무가 아니라 목적한 성과를 내기 위한 인재를 찾고 육성하는 기획자이며, 성과가 저조하면 조직의 원인을 찾아내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전문가다. 국내 기업들도 전략적 코치로서 CHRO를 육성하고 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 내 트레이닝 방식을 바꾸는 것도 시급하다. 조사 과정에서 만난 경영진은 “상하 간 소통을 위해 토요일에 임직원 축구대회를 열기로 했다”, “요즘 세대는 근성이 부족하다. 언제 한 번 간담회를 열어 회사 역사에 대해 얘기해줘야겠다”고 말하며 조직 문화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와 조직 문화에는 통하지 않을 방식이다. 100개 기업 진단 결과 50대와 30~40대의 조직 견해 차이는 컸다. 해당 기업의 조직건강도에 대해 50대 이상은 67점을 준 데 반해 30~40대는 최하점에 가까운 50점대를 준 것이다. 이제 조직의 변화는 30~40대가 주도해야 한다. 트레이닝도 CEO의 시각이 아니라 30~40대 직원들에게 맞는 방식을 테스트하고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

트레이닝 방식도 혁신해야

조직에 대한 정확한 건강 진단에 기반해 뚜렷한 지향점을 세우고 강화가 필요한 영역에 대한 집중적 훈련을 해 나가는 과학적 방법이 사업 계획이나 전략에만 아니라 조직에도 적용돼야 할 때다. 기업의 CEO와 경영진의 뼈를 깎는 자기 인식과 성찰, 기업문화 및 조직건강도에 대한 적극적 개선 의지와 지원이 절실하다. 저성장 시대, 똑똑한 기업이 아니라 ‘건강한 기업’이 불확실성과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속성과 탄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강혜진 < 맥킨지 서울사무소 조직 부문 파트너 >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