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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500원 찍힌 통장에 뭉클해진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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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지난 20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대형 화면에 잡힌 한 꼬깃꼬깃한 통장을 보는 윤종규 국민은행장의 눈가가 촉촉해졌습니다. 감사함과 자부심, 은행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지난 20일은 국민은행에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40년 이상 장기 거래한 고객을 초청한 행사였거든요. 지난 8월 국민은행 내부 아이디어 토론 과정에서 시작된 행사였습니다. “단순히 선물을 주거나 우대금리를 주는 것만이 아닌 고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고객들도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을 짜서 기획안을 올렸고, 기획안을 받은 윤 행장은 단번에 허락했다고 합니다. 창립일이 있는 11월에 하기로 결정을 하고, 3개월 동안 본격적으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일부러 가장 크고 화려한 호텔을 장소로 정하고, 음식도 고급으로 마련했다고 합니다. 가수 장윤정씨의 공연도 프로그램에 포함시켰고요.

역설적이게도 행사 준비에 가장 큰 과제는 고객 초청이었다고 합니다. 40년 이상 거래한 고객 중에서 일정 거래액 기준을 넘긴 우수 고객을 뽑았더니 자연스럽게 60~70대에 집중됐다고 합니다. 물론 80대도 포함돼 있었고요. 국민은행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일일이 전화를 돌려 초청을 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어렵다는 의사를 전해온 고객들고 많았고요.

이렇게 총 100명을 초청했고, 그들의 배우자까지 총 200명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국민은행은 이날 1965년부터 국민은행을 이용한 70대 남성 고객에게 건배사를 부탁했습니다. 건배사 직전 목사 출신인 이 고객은 짧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국민은행의 역사에는 개인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족을 위해 땀 흘리고 고생했던 순간, 기뻤던 순간들이 순차적으로 묻어 있다. 고객들이 은행을 만들고, 은행이 고객의 삶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면서 첫 거래 때부터 간직한 오래된 종이통장을 꺼내 보였습니다. 낡았지만 500원이라는 숫자가 빼곡히 찍혀 있는 종이통장이었습니다. 당시 월급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국민은행도 이런 깜짝 이벤트에 놀랐다고 합니다. 사전에 부탁하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이날 윤 행장은 20여개 테이블을 모두 돌며 인사를 나누고, 원하는 고객과 기념 사진을 찍어줬습니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데다 국민은행 임직원들 모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판단에서 내년에도 비슷한 성격의 행사를 고민 중이라고 하네요. (끝) /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7(토)